[SPECIAL] 작은 생명에게 손을 내밀다, 동물보호활동가

한겨레 2021. 6. 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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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4일, 대전고등법원은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이 운영하는 펫샵의 개 79마리를 방치해 죽인 피의자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하며 이렇게 말했다.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동물복지 NGO, 동물자유연대는 동물복지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1990년대부터 보호 활동을 시작해 동물들의 권리를 지키고,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의 소리로 동물에게 귀를 기울이는 동물보호활동가의 하루 일과를 알아보자.

1. 제보 확인

사진 손홍주

오전에 사무실에 출근하면 간밤에 쌓인 제보 전화를 받거나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에 접속해 학대 제보 게시판을 확인한다. 제보자와 통화를 하여 학대당하거나 유기당한 동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학대가 의심된다면 제보자에게 직접 경찰에 신고해주기를 요청한다.

2. 출동 준비

사진 손홍주

유기동물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보호하기 위해서는 포획틀이 필요하다. 유기동물이 있는 장소의 위치와 길 등을 미리 파악해둔다.

3. 현장 출동

사진 송지성 제공

학대당하고 있는 동물이 발견되었다면 학대자(가해자)가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 상황 목격자에게 진술조서를 받고, 증거로 챙겨둘 것이 있다면 모두 수집한다. 가해자가 특정되면 특정 가해자가 어떻게 움직이며 동물을 학대했고 이동 동선은 어떻게 됐을지 등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유기동물이 있다면 유기동물의 반경 동선을 그리고, 언제 어디에 포획틀을 놓아 동물을 구조할지 예측한다.

4. 경찰 신고/포획

사진 송지성 제공

증거를 수집했다면 특정한 가해자를 고발하는 고소장을 쓰고 경찰에 접수한다. CCTV 등은 수사권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으므로 경찰 수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협조한다. 유기동물을 포획했다면 일단 병원에 간다.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기에 각종 검사를 하고, 필요하다면 수술도 진행한다.

5. 사건 알리기

사진 손홍주

수사가 시작되었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사건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면 여론이 형성되고 사건이 좀 더 주목받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동물들이 직면하는 현실이 어떤 것인지 널리 알릴 수 있다. 유기동물의 경우, 입양처를 알아보고 병원비 모금을 진행하는 등의 일을 한다.

6. 행정절차 확인/입양

사진 송지성 제공

동물 학대 사건이 재판으로 갈 경우 재판에 방청을 가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사건에 계속 관심을 주기를 요청한다. 이런 사건이 하나둘씩 쌓이면 생명을 위한 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기동물의 경우 입양처가 확정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입양되지 않을 경우 활동가들이 입양하기도 하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동물을 활동가들이 보호할 수는 없다. 입양처가 좋은 곳으로 정해지면 활동가들의 마음에도 빛이 스며든다.

■ 동물보호활동가가 말하는 직업 이야기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 송지성 선임활동가.사진 손홍주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 송지성 선임활동가

유기동물 입양 문화 전파, 동물보호 관련법 개정 및 제정 등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며 한국사회에 동물복지 개념을 도입해온 동물자유연대. 이러한 행보를 지켜본 송지성 활동가는 동물보호활동가가 되기 위해 동물자유연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사회적 안전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기를 바란다는 그에게 동물보호활동가의 직업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떤 일을 계기로 동물보호활동가가 되셨나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생겨, 처음에는 노인복지 관련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동물자유연대 강아지 공장 사건을 접하게 됐죠. 우리나라의 진정한 약자는 인간보다 약한 대상,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동물보호활동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요. 함께 동물원에 갔던 어느 날, 다른 아이들이 동물원 유리벽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내 아이가 자라서 유리벽 너머에 갇힌 동물을 학대하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동물복지를 공부하고 싶었고요. 우연한 기회로 동물자유연대에 입사한 후 지금은 5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다년간 동물보호활동을 하시면서 체득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동물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출동해서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맡습니다. 아직 경찰 내부에 동물학대 수사 체계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현장조사를 하기도 해요. CCTV 위치를 확인하고, 목격자를 확보하는 식으로요. 정황 증거만으로는 수사 시작이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증거를 많이 수집하여 고발장을 작성해요. 마치 형사가 된 것처럼 촉을 발휘하여 피의자를 특정하기도 합니다.(웃음)

구조 대상 동물들이 포획틀 안으로 들어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선으로 관찰이 가능한 영상 장비를 설치한다.사진 송지성 제공

지금까지 많은 동물구조에 참여하셨는데요, 그중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요?

2018년 천안의 한 펫숍에서 홍역에 걸린 채로 방치된 개 79마리가 아사한 사건이 있었어요. 국민적 관심이 쏠렸기 때문에 시민 탄원서를 모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하고,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재판 과정을 전부 방청했고요. 가해자가 1심 결과인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이 억울하다고 항소하여 재판이 고등법원으로까지 넘어갔는데요.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판사님도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강아지를 ‘아이’라고 표현하시며 함께 분노해주셨어요. ‘이제 법적으로도 동물복지가 인정되는구나’ 싶어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감동적이네요.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은 어떤 때일까요?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구조하지 못했을 때가 제일 힘듭니다. 학대 사건은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이미 동물이 죽어 있는 경우가 많아 법적인 조치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고요. 배수관 안으로 아기 고양이가 들어갔을 땐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건물의 일부를 허물어야 했어요. 어떤 건물주가 고양이 한 마리를 위해서 건물을 허물려고 하겠어요. 그냥 돌아와야 할 때 허탈하고, 심적으로 힘이 듭니다. 마음 같아서는 홍길동이 되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모든 동물을 구조하고 싶어요.

구조한 동물은 개별 건강상태 확인이 필수다. 구조된 강아지들이 캐리어 안에서 활동가들의 건강 확인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송지성 제공

저도 덩달아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직업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물을 학대하던 사람들이 사람으로 범죄 행위를 옮겨가는 경우가 많아요. 동물복지 감수성이나 인식이 개선된다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동물보호활동가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함께 필요합니다. 동물복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공감해야 해요. 법이나 제도 개선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동물복지가 왜 필요한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활동가가 함께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동물복지를 위해 힘쓸 수 있겠죠. 저희 단체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보호활동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해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주변에 있는 동물을 둘러보았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필요한 동물이 있나 살펴보고, 부모님과 협의하여 사료를 챙겨주는 식으로요. 당장 도움이 필요한 동물이 있다면, 그 동물을 어떻게 구조할지 스스로 설계해보고 실천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지자체나 동물보호단체에서 주최하는 동물보호교육도 들어보세요. 학교 내에 동물복지 동아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활동에 참여해보세요.

활동가님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국가차원의 위기 동물 대응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영국에는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보호 단체예요. 단체에 소속된 동물보호 조사관은 동물복지 상황을 조사하고 동물보호법에 의거하여 수사 및 기소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죠. 동물병원도 연계하고 있어,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바로 치료하는 일도 가능해요. 동물을 통해 변화한 사람들이 조금씩 모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김나래 · 사진 손홍주, 송지성 제공 · 진행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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