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상대편 강성 지지자의 모욕도 감수..'정치인 아들'을 둔 숙명

기자 2021. 6.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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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끝없이 빛을 찾아간다.

그가 받는 빛이 강해질수록, 등 뒤에 서리는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공천이 확정된 그날, 나는 부랴부랴 사무실을 계약하고 친구들과 캠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엄마 그게 지금 왜 중요해요'라고 따져 묻는 나에게 엄마는 '내가 뭘 준비하면 되나 싶어서'라고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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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정치인은 끝없이 빛을 찾아간다. 그가 받는 빛이 강해질수록, 등 뒤에 서리는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정치인 가족의 이야기다. 나는 지난해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홀로 급하게 준비했던 선거인지라, 부모님은 내 출마 소식을 공천 확정과 함께 언론을 통해 알게 되셨다. 장가도 안 보낸 서른세 살의 아들이, 당신이 사는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TV에서 접하게 된 상황이라면 어떤 부모나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공천이 확정된 그날, 나는 부랴부랴 사무실을 계약하고 친구들과 캠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선거 준비가 늦었던 만큼 해야 할 일들이 잔뜩 밀려 있는 상황에서 지인들과 기자들의 전화도 쇄도했다. 기쁨과 부담, 초조함과 혼란이 섞인 북새통을 비집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출마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냐는 물음에 나는 대뜸 짜증을 냈다.

‘엄마 그게 지금 왜 중요해요’라고 따져 묻는 나에게 엄마는 ‘내가 뭘 준비하면 되나 싶어서…’라고 대답하셨다.

며칠 후 캠프가 꾸려지고 본격적으로 지역을 누비기 시작하면서도 나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선거 국면에서 당연히 부모님은 돕기를 주저하셨다. 낯설기만 한 선거에서 당신들은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몹시 위축되셨다. 휴대전화도 참모에게 맡기고 명함 돌리느라 여념이 없던 내게 말 한마디 건네기도 어려우셨다. 새벽부터 캠프에 나와 선거복과 비슷한 색의 겉옷을 입고 빈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선거 활동 중 주의할 사항을 일러주러 사무실을 방문했다. 내가 없던 사무실에서 부모님과 사무국장이 그들을 응대했다. 그 자리에서 선거법상 직계존속은 후보자를 대신해 명함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명함을 열심히 돌리는 것이 유일하게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하신 것 같다.

그날부터 부모님은 나 이상으로 지역을 누비셨다. 지대가 높아 선거운동원들이 잘 가지 못하는 산자락의 꽃동네를 부모님은 매일 오가셨다. 아직 쌀쌀한 초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린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셨다. 상대편 강성 지지자나 취객에게 온갖 모욕적 처우를 당해도 부모님은 아들 홍보를 멈추지 않으셨다. 싸늘했던 지난 선거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겪으셨을 고생은 상당했을 것이다. 60일 남짓의 치열한 선거운동을 마치고 결국 나는 낙선했다.

낙선 다음 날, 모두가 사라진 캠프의 빈 공간에는 부모님과 나만 남았다. 사무실 집기를 정리하는데 엄마는 내 얼굴이 들어간 현수막을 버리지 못하셨다. 지금도 그 현수막은 부모님 댁의 창고에 있다. 부모님은 이제 ‘정치인 김재섭’의 부모가 되셨다. 동네 식당에서 술 한 병 시키는 것도 어려워졌고, 채소 가격도 흥정하지 못하게 되셨다. 부모님은 오직 나 때문에 컴컴한 그늘에서 사신다.

김재섭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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