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외교'로 밀착한 미·일·대만..보란듯 중국 견제

박수현 기자 2021. 6. 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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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反中) 전선을 확대 중인 미국이 이번엔 ‘백신 외교’로 대만과 밀착했다. 일본이 무상 제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대만에 도착한지 불과 이틀 만에 연방 상원의원단을 대만에 보내 백신 75만회분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일·대만이 보란듯 손을 잡고 중국 견제에 나선 모습이다. 대만은 ‘중국의 간섭으로 백신 확보가 좌절됐다’며 중국의 백신 지원을 거절했고, 일본은 미국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신을 제공했다. 미국은 이번 방문에 행정 전용기가 아닌 장거리 대형 전략 수송기를 이용하면서 중국에 대한 도발 수위를 높였다.

2021년 6월 6일 태미 덕워스, 댄 설리번, 크리스토퍼 쿤스 등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미국이 대만에 미국산 코로나19 백신 75만회분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태미 덕워스, 크리스토퍼 쿤스, 댄 설리번 등 미 상원의원 대표단 3명은 6일 대만을 방문해 대만에 미국산 백신 75만회분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은 앞서 미국 정부가 세계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총 8000만회분의 일부다. 구체적인 백신 종류는 알려지지 않았다.

덕워스 의원은 이날 타이베이 쑹산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만은 우리에게 방호용품을 제공하고, 미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백신은) 대만에 대한 고마움을 반영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대만의 절박한 수요를 인식하고 있다”며 “대만의 수요를 파악해 이를 워싱턴에 전달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공항에서 대표단을 맞이한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장관)은 “대만은 독재 국가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지한다”며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이 지지를 보여줘 다행”이라고 화답했다. 대표단은 이후 대만 공군 쑹산 기지 지휘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면담을 갖고 미국과 대만 관계, 역내 안보 등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백신의 무기화’가 일정 부분 현실화된 모양새다. 일련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방역 모범국으로 손꼽히던 대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부터 살펴봐야 한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로이터 연합뉴스

대만에선 지난달 15일부터 약 9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5일 기준 대만의 누적 확진자 수는 1만956명에 달한다. 다만 백신 접종률은 전체 인구의 1.4%(블룸버그 백신트래커 기준)에 불과한데, 이는 대만과 지난 2월 백신 구매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던 바이오엔테크가 결정을 번복한 여파다. 차이 총통은 이것이 ‘중국의 개입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백신 공급 계약을 방해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며 대만에 중국산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대중(對中) 정책을 담당하는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는 “대륙(중국) 측의 통일전선 전술”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대만은 중국과 독립된 국가’라는 원칙에 기초해 중국에 강경 대응하긴 했지만 확진자가 느는 상황에서 대만의 부담은 커져만 갔다. 급기야 천스중 대만 위생부장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에서 “현재 중국이 맞고 있는 백신을 우리가 함부로 맞을 수는 없지만, 중국이 맞지 않는 백신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다”고 말하며 화이자 백신 공급 여지를 열어뒀다.

진퇴양난에 빠진 대만에 먼저 손을 건넨 건 일본이었다. 일본은 자국에서 접종을 중단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24만회분을 지난 4일 대만에 보냈다. 외교 문제에 있어 미국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활약이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대만 측으로부터 100만회분 정도의 백신을 융통할 수 없겠느냐는 타진을 받던 중 미국 측의 ‘OK 사인’을 얻자마자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지난달 24일 셰창팅 주일 대만 대표와 조셉 영 일본 주재 미국 임시 대리대사 등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 초청받은 소노우라 겐타로 전 총리보좌관이 회의가 끝나고 ‘아스트라제네카의 일본 내 접종 보류 및 대만 제공 검토를 시사하자 참석자들이 호응했다’고 보고하자 아베 전 총리가 “바로 하자”며 응했다는 것이다.

조셉 영 일본 주재 미국 임시 대리대사가 2021년 5월 24일 셰창팅 주일 대만 대표의 공관을 방문하고 있다. 주일 미국 대사가 주일 대만 대표의 공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9년 미국과 대만이 단교한 이후 이때가 처음이다. /조셉 영 트위터

백신 양도는 이후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거쳐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승인을 얻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무성은 당초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를 통한 제공을 검토했으나, 아베 전 총리 등이 “시간이 너무 걸린다”며 반대해 수량은 적더라도 직접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일본이 백신을 해외에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일본의 백신이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상원 대표단을 공군기에 태워 대만에 보냈다. 로이터는 “대표단이 일반적인 행정 전용기가 아닌 미 공군 C-17 수송기를 이용했다”며 “미국의 공군기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표면상으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각국과 나누겠다고 한 백신의 일부를 전달한 것에 불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견제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그간 ‘항행의 자유’ 전략 등을 펼치며 중국의 영향력이 대만 해협에까지 미치는 것을 의식해왔기 때문이다. 황제정 대만 담강대 전략대학원 부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이 대만에 대표단을 보낸 것은 사실상 대만 해협 정세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단’을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미국의 백신 공급에 대해 “적시에 내리는 비와 같다. 각국의 도움을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앞서 일본의 백신이 대만에 도착했을 때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마워요, 일본 정부”라고 썼다.

중국은 예상대로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이날 미국의 백신 지원에 관해 “대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실제로 백신을 손에 쥐는 것”이라며 “공수표는 필요없다”고 깎아내렸다. 신문은 이어 “중국의 군사력은 대만을 넘어선 지역으로까지 확장된지 오래”라며 “중국은 대만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대비해 전 세계에서 힘과 위신을 쌓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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