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유 머스트 컴백 홈'.. 광고 타고 돌아 온 옛 노래에 빠지다

기자 2021. 6. 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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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고추잠자리·컴백홈

전국에 노래비가 있지만 거긴 노래를 묻은 곳이 아니다. 노래를 심은 곳이다. 노래의 일생이 끝났다고 추모하는 게 아니라 노래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라고 세운 비석이다. 음악동네 종합병원에 산부인과는 있어도 장례식장은 없는 까닭을 아는가. 태어난 모든 노래가 부활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서다. 장소와 시기는 예측불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라디오와 함께 살았었지/성문종합영어보다 비틀스가 좋았지/생일선물로 받았던 기타/산울림의 노래들을 들으며/우리도 언젠간 그렇게 노래하고 싶었지’(동물원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중). 그 시절 기타와 성문종합영어 사이엔 세광출판사에서 나온 악보집이 있었다.

가사(악장가사)와 악보(시용향악보)의 역사는 유구하다. 조선 시대에 출판사가 있었다면 음악 관련 책들은 아마도 세광에서 독점했을 것이다. 사라진 노래들은 숨은 건가, 죽은 건가. 실록을 들춰 사례를 보자. 1977년 충남대 국문과 재학생 이명우는 고려가요 ‘가시리’와 ‘청산별곡’ 가사에 이스라엘민요 ‘장미 가득한 저녁에’(Erev Shel Shoshanim) 멜로디를 결합시킨 기발한 융합가요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았다. 천 년 동안 책 속에, 연구실 안에 갇혀 있던 ‘가시리’는 청년의 실험적 시도로 불사조가 됐다.

라디오에서 음악의 파도가 음표와 사귈 때 느닷없이 쉼표가 찍힌다.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주어가 생략됐지만 누가 올 건지 대충 짐작되지 않는가. 수많은 디제이가 유사한 문장을 읽고 앞으로도 쓸 테지만 사가(史家)는 오직 한 사람 배철수를 기록할 것이다. 그가 이 말을 처음 해서가 아니라 그가 이 말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불사조는 불에 타죽은 새가 아니라 잿더미 속에서도 살아남은 새다. 음악동네엔 휴화산이 많다. 분출을 대비해 단장하는 새들이 여기저기에 서식한다.

시대를 휘감던 노래들이 30초짜리 광고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난 옛날 노래가 옛날 사람들 것인 줄로만 알았다. 오해였다.” 독백에 이어 ‘고추잠자리’가 그물망에서 퍼덕인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그런가 봐/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한편으론 반갑고 한편으론 서글프다. 옛날 노래를 기억하고 지금도 애창하는 나와 내 친구는 이제 ‘옛날 사람’인가. ‘고추잠자리’는 딱 40년 전(1981) 발표된 노래다. 노래도 나이를 먹을까. 광고의 카피가 예사롭지 않다. ‘어른이 되어간다. 가치를 알아간다’. 심사가 복잡해진다. 그때 난 왜 고추잠자리를 잡으려 한 걸까. 좋아서 잡았지만 결국은 내가 잠자리를 죽인 게 아닐까.

광고 속 청년의 반응에서 희망을 줍는다. ‘이거 힙합이네’. 세상의 모든 광고는 반응을 먹고 산다. 모델과 제작자의 반응이 아니라 광고주와 소비자의 반응에 울고 웃는다. 그래서 한 땀 한 땀 수놓듯 완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15초, 혹은 30초에 들어간 제작비와 제작기간을 감안한다면 광고가 나온다고 함부로 채널을 옮겨 다니는 건 예의가 아니다. 배철수의 말대로 광고 듣고 다시 와야 마땅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컴백 홈’도 세탁기 광고를 타고 돌아왔다. 새로 써넣은 말은 한마디도 없고 오리지널 노래로만 1분을 채웠다. 반복되는 ‘유 머스트 컴백 홈’(YOU MUST COME BACK HOME) 사이에 나오는 핵심은 이렇다.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거칠은 인생 속에 난 이제 깨달았어/날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다짐한다. ‘나를 완성하겠어’. 노래를 완성한 사람은 언젠가 죽지만 완성된 노래는 죽지 않는다. 비석은 가버린 사람의 공적을 건조하게 기록할 뿐이지만 노래비에 적힌 감정과 다짐은 천 년이 지나도 장미 가득한 저녁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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