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막 내리는 중·유럽 밀월시대
반중 정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
북유럽 발트해에 접한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가 17+1 정상회의에서 탈퇴하겠다고 한 것이 지난 주 화제였죠. 중·동부 유럽 17개국과 중국이 참여한 17+1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위해 공들여 만든 정상회의입니다.
리투아니아는 인구가 280만명으로 중국의 500분의 1에 불과한 나라인데, 요즘 잇단 반중 행보로 중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죠.
◇유럽의회, 87.2%가 비준 심사 중단에 찬성
사실 리투아니아의 반기보다 중국에게 더 뼈아픈 건 유럽의회가 중·유럽투자협정(CAI) 비준 심사를 중단하기로 한 일입니다.
발단은 지난 3월말에 있었던 유럽연합(EU)의 대중 제재였죠. 신장 위구르족 탄압을 이유로 신장 공안국장 등에 제재를 가했습니다. EU가 대중제재에 나선 건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처음이라고 하죠. 중국도 이에 맞서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제기한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유럽의회 의원 등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제재를 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회가 5월20일 CAI 비준 심사 중단안에 대해 표결을 했죠.
표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687명의 의원이 표결에 참여해 599명(87.2%)이 심사 중단에 찬성했고, 30명이 반대했어요. 유럽의회에는 좌우에 걸쳐 여러 정당이 있고, 의원들의 국적도 제각각이지만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 앞에서 똘똘 뭉친 겁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안긴 선물
CAI는 양측 기업들이 상대방 시장에 자유롭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푸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관세 부분만 빠진 자유무역협정으로 볼 수 있죠.
이 협정은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가 만들어준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유럽 동맹국들에게 나토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유럽산 자동차 등에 관세 폭탄을 안기겠다고 협박했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과 별도의 무역협상을 벌여 실리를 챙겼습니다. 동맹보다 실리를 더 중시하는 외교 노선을 걸었죠.
그러자 유럽연합은 작년말 전격적으로 중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합니다. 유럽도 챙길 건 챙기겠다는 뜻이었죠.
이 협정은 협상에 7년이 걸렸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제조업 모든 분야를 개방하라는 EU의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죠.
그런데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 갑자기 협정 타결을 서두릅니다. 공급 과잉 업종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동차, 은행, 보험, 증권, 병원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열기로 했죠. 사실상 EU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습니다.
◇우군 메르켈 총리 연말 은퇴
그 이유는 치열한 미중 경쟁 와중에서 유럽이 중국의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 중국시장을 무기로 유럽 국가를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유럽 기술 기업도 사들이면서 미국 주도의 대중 포위망에 구멍을 내겠다는 의도이죠.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 동맹 복원에 나서면 기회가 사라질까 작년 12월말에 부랴부랴 협정을 타결했습니다. 이렇게 공을 들인 협정이 유럽의회 비준이라는 마지막 단계에서 암초에 부딪힐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겠죠.
유럽 내에서는 협정 비준이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적잖습니다.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협정 체결을 주도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올해 말 은퇴하는 게 중국으로서는 큰 악재이죠. 이번 표결에서 드러난 뿌리 깊은 반중정서를 극복하고 협정 비준을 이끌어줄 큰 동력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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