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경기 지배..한국축구 '승리의 부적' 손흥민
[경향신문]
압도적 개인기·돌파력으로 상대 수비 흔들어 ‘공간 창출’
골·어시스트 없이도 벤투호 ‘단조로운 공격’ 단번에 해결
한국 축구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29·토트넘)은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월드클래스’를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손흥민은 지난 5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H조 2차 예선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5-0 승리에 앞장섰다.
5골이나 나왔지만 손흥민의 공격포인트는 없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대표팀 일정 중단을 고려하더라도 득점 공백이 꽤 길다. 손흥민의 대표팀 마지막 득점은 2019년 10월 스리랑카전(2골 1도움)으로, 605일이나 지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올 시즌 17골(공식전 22골)을 기록한 손흥민의 초절정 득점력을 고려하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손흥민의 경기력은 찬사를 받았다. 대표팀에 합류하며 “골 욕심은 전혀 없다. 팀이 잘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다른 선수들을 도울까 생각한다”고 한 그의 말처럼 크게 골 욕심을 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신 대표팀은 손흥민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손흥민이 공을 잡으면, 그를 막기 위한 수비가 둘 이상 따라붙었다. 두껍게 쌓았던 상대 수비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손흥민은 후방으로 자주 내려와 수비수들을 유혹했다. 벌어진 뒷공간은 대표팀의 놀이터가 됐다. 손흥민은 압도적인 개인 기량으로 돌파와 침투를 선보였다. 왼쪽 풀백 홍철과의 연계 플레이는 물론 2 대 1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진도 흔들었다.
손흥민은 전반에만 세 차례 슛 찬스를 놓쳤다. 좋은 컨디션을 고려하면 골을 욕심낼 법도 했지만 이후 플레이도 이타적이었다. 2-0으로 리드한 후반에는 단 16분 만에 3골에 모두 관여하는 것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후반 11분 코너킥을 정우영에게 정확하게 전달했고, 정우영이 떨군 공을 수비수 김영권이 마무리했다.
손흥민은 후반 17분 프리킥 찬스에서는 강력한 무회전 슈팅을 날렸다. 묵직한 공의 힘에 상대 골키퍼가 어렵게 튕겨내는 데 그쳤고, 뛰어든 권창훈이 득점했다. 후반 27분에는 공중볼의 방향을 돌려놓는 트래핑 동작 하나로 수비 둘을 한 번에 제치는 개인기를 선보인 뒤 페널티지역 왼쪽 공간으로 들어가는 권창훈에게 패스를 전달했다. 권창훈의 낮은 크로스를 받은 황의조가 왼발 힐킥으로 방향을 바꿔 쐐기골을 넣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전술은 그동안 단조로운 공격이 문제란 지적을 받아왔다. 모처럼 합류한 손흥민이 이런 아쉬움을 단번에 털어냈다. 비록 상대는 약했지만, 대표팀은 손흥민을 중심으로 빠른 템포와 스피드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공격과 압박을 펼친 점에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또 그동안 측면 빌드업을 가져가는 과정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움직임이 제한적이었으나, 남태희·권창훈의 공격 가담과 넓은 활동 반경 등 공격의 다양성도 좋았다.
벤투 감독은 경기 뒤 손흥민의 경기력에 대해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 볼을 뺏기는 순간 상대 역습에 대비하는 등 요구사항을 이행하는 부분도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한국-투르크메니스탄전 결과를 전하며 손흥민을 ‘슈퍼스타’ ‘(행운의) 부적’이라 표현했다. 그러면서 “손흥민이 이끈 한국 대표팀이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다”고 평가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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