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속 당신, 괜찮습니까?..미술이 묻다

배문규 기자 2021. 6. 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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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재난과 치유'전

[경향신문]

국립현대미술관 ‘재난과 치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을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진주의 대형 회화 ‘사각(死角)’은 팬데믹 시대를 은유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내외 작가 35명이 본 ‘재난’
현 상황 다각도로 비추는 시도

어디에서도 전모를 볼 수 없다. 뾰족한 모서리가 관객을 맞는다. 한쪽 화면에는 ‘집콕’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열대 화초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반대편으로 돌면 핏물이 채워진 수영장에 수액을 짜는 나무들이 서 있고, 빨랫줄에는 흰 광목천들이 널려 있다. 천 뒤로 숨고 마스크를 쓰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불안이 감돈다. 이진주의 ‘사각(死角)’은 초현실적 풍경으로 일상과 죽음이 혼재하는 팬데믹 시대를 은유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에서 개막한 ‘재난과 치유’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국현에서 선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국내외 작가 35명이 전 지구적 감염병 발생과 확산을 둘러싼 현상을 저마다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전시는 ‘감염의 징후와 증상’ ‘집콕, 홀로 같이 살기’ ‘숫자와 거리’ ‘여기의 밖, 그곳의 안’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라 할 수 있는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1985).
요제프 보이스의 ‘곤경의 일부’
펠트로 ‘재난에서의 회복’ 표현

전시를 함축하는 작품은 전시실 초입에서 만나는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이다. 인체에 담요를 두른 듯한 천 더미에 나무 창만 서 있다. 독일 공군이었던 보이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그를 구한 것은 타타르 유목민. 그는 동물 지방과 펠트 천으로 감싸여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미술의 치유력을 옹호한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 된 얘기다. 따스한 펠트는 재난으로부터의 회복이었다.

성능경의 ‘손씻기’는 코로나19로 변해버린 일상에 작은 위로를 준다. 사진 20장에 걸쳐 마스크를 쓴 작가가 꼼꼼하게 손 씻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익 캠페인? 손글씨로 쓴 ‘작가의 말’에 미소짓게 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 세숫물을 대령하는 게 일이었고, 아버지의 올곧은 씻는 행위가 재미있어 영화 보듯 했다고 한다. 흰 수염 할아버지가 된 그의 ‘손씻기’는 오늘날 “온 세상에 퍼진 못된 돌림 아품”의 첫 번째 방어막이 됐다. “나는 내 ‘손씻기’를 온 누리의 어린이들이, 내가 어렸을 적 내 아버지를 관람하였듯이, 재미있게 많이 구경하였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

코로나19는 문명의 질주가 만들어낸 재앙이다. 세상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좁아진 시대에 사람들은 단절을 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사회 취약층의 삶에서 ‘재난의 불평등’도 여실히 드러났다. 홍진훤의 영상 작업은 집콕과 비대면 일상을 가능케 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현재를 다룬다. “누군가의 안전은 누군가의 위험을 담보로 성립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배달·택배 노동자들은 공허하게 재생되는 방역 수칙을 뒤로하고, 고된 움직임을 반복한다. 무진형제의 ‘결구’와 차재민의 ‘미궁과 크로마키’는 ‘접촉자’이면서 ‘유지보수자’로 살아가는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영상 언어로 상기시킨다.

코로나19의 시각적 상징에서 숫자를 빼놓을 수 없다. ‘일일확진자’ ‘백신접종자’ ‘거리 두기 단계’ 등 숫자는 정보이자 그 이상의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이지원(아키타입)의 ‘팬데믹 다이어그램’은 다양한 통계와 데이터들을 수집·분석하여 시각화한 작업이다. 여성 고용 추이, 플랫폼 노동자 고용 가입 현황, 코리아빌딩 콜센터 좌석 배치도 등의 도표는 현황을 보여줄 뿐이지만, 여기서 사회적 불평등, 차별과 혐오를 떠올리게 된다. 리암 길릭의 ‘상승하는 역설’은 무한등비급수로 표현된 0과 1의 대조로 삶과 죽음의 팬데믹 상황을 암시하고, 미야지마 다쓰오의 ‘카운터 갭’은 명멸하는 숫자들이 보다 추상적인 사유로 관객을 이끈다.

한번에 전모 못 보는 이진주 ‘사각’
일상·죽음 혼재하는 현실 은유

창문 너머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질리언 웨어링의 ‘당신의 관점’은 한참을 ‘멍 때리고’ 바라보게 된다. 서도호, 이혜인, 칸디다 회퍼 등의 작업은 비대면의 삶이 바꿔놓은 공간의 경계를 감각하도록 한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를 비롯해 이영주, 염지혜, 에이샤-리사 아틸라 등의 영상 작업은 삶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인류를 위해 필요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전시에선 재난의 궤적을 따라가게 된다. 예술의 동시대적 대응을 보여주는 시의성 있는 기획이지만, ‘재난’과 ‘치유’라는 키워드는 다소 막연하다. 현재진행형인 팬데믹을 현시점에서 ‘무엇’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적과 배경, 세대가 다른 작가들의 전 장르에 걸친 다채로운 작업들은 현 상황을 다각도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전시장을 나서며 두 대형 작품은 놓칠 수 없다. 허윤희의 벽화 ‘빙하와 풍란1’은 멸종위기에 처한 자생식물의 모습을 녹아내린 빙하가 떠다니는 풍경과 병치시킨다. ‘무명이어도 어여쁘고 향기롭기만 한 그 얼굴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전시 종료를 앞두고 벽화를 지우는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

걸음을 조금 옮기면 이배의 ‘불로부터’와 마주한다. 한지 위에 거대한 숯 조각을 앉히고, 매달았다. 숯은 소멸에서 생성으로 이어지는 나무의 정수다. 동양화 위를 걷듯, 숯 사이를 소요할 수 있다. 전시는 8월1일까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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