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플레이션은 임금이 오를 때 온다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1. 6. 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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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즘 금융시장의 화두는 단연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 생긴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인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수요가 건실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경기회복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물가 상승이 불러올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와 금리 상승이다.

다소 불안한 점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과욕이다. 1조900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에 이어, 공화당의 반대로 규모가 줄었지만 1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계획도 의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여기에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가족계획에도 1조8000억달러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와 가계가 축적해 놓은 막대한 저축으로 강력한 경기회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지출이 과하면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일시적인 물가 불안을 넘어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한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진성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높아진 가격에도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임금 생활자들의 실질 구매력을 훼손시킨다. 구매력을 보전하기 위해 임금 상승이 시작되는 순간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상승’의 연결고리가 완성되게 된다. 한 번 오른 임금은 다시 하락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임금이 상승하면 이는 소비 여력의 거의 항구적 확충으로 귀결된다. 진성 인플레이션은 명목 화폐로 표시된 ‘사람의 몸값’이 상승하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이들은 장기적으로 임금이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분기 미국의 고용비용지수는 2007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폭으로 상승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아직 회복되지 않은 일자리가 850만개에 달하는데 어떻게 임금이 올랐을까.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로버트 캐플런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은퇴를 망설이던 다수 노동자들의 퇴장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의 유휴인력 규모가 지표로 보는 것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임금이 오를 수 있다고 본다.

런던 정경대 교수인 찰스 굿하트도 선진국의 인구구조가 구조적인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굿하트는 고령화의 진전으로 은퇴자가 많아지면, 경제 전체적으로 생산하는 사람보다 소비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저출생으로 신규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높아져 임금이 상승할 것으로 봤다.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지만 필자는 임금 상승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캐플런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기 이전 미국의 실업률이 3.5%까지 떨어지면서 거의 완전 고용이 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임금이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업들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인간의 노동이 아닌 데이터 중심이라는 점, 현재의 교육제도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인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노동조합의 영향력 약화 등이 임금 상승을 막고 있는 요인이라고 본다. 기본소득이라는 의제 역시 인간의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인구구조론의 관점에서 인플레이션과 임금 상승 가능성을 언급한 굿하트의 주장 역시 저출생·고령화의 길을 가고 있는 일본과 유럽 등에서 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반론이 가능하다. 특히 굿하트가 말했던 인구구조 변화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노동시장은 굿하트의 주장과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 고령자들도 노동시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정년은 올해 4월부터 70세로 연장됐다.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이지만, 정년 연장이 아니더라도 일본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취업비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희소한 노동력이 임금 상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일본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일본의 산업역군이었단 단카이 세대가 대거 은퇴하고, 저출생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지만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

기대 여명 증가에 따른 추가 소득 필요성, 연금 시스템 유지를 위해 정년 연장이 필요한 정부의 의도 등이 노동공급을 늘리면서 임금 상승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금융시장에서 우려하고 있는 임금 상승발 진성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장기화되고 있는 저금리와 자산시장의 활황 역시 노동의 소외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 압박 약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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