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성시대의 이면..산처럼 쌓일 폐배터리를 어이할꼬

정환보 기자 2021. 6. 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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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만큼 성장성 좋은 '업사이클'로 가치 재창출 활발

[경향신문]

제주 제주테크노파크 ‘전기차배터리 산업화센터’에 보관된 폐배터리(왼쪽 사진). SK이노베이션 연구원이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수산화리튬을 살펴보고 있다(가운데 원 안 사진). SK이노베이션 제공
글로벌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시장, 2030년엔 20조원 이상 규모
ESG 경영 일환, 기업 가치도 높여…점유율 높은 K배터리 업체들 관심
LG엔솔·SK이노·삼성SDI·포스코…미래 신사업으로 적극적 투자

바야흐로 ‘전기차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아직까지 일반 주차장에서 볼 수 있는 전기차의 숫자는 미미한 편이지만,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올 한 해 출시하겠다고 예고한 전기차 차종만 100여종에 이른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딜로이트의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약 250만대 넘게 판매된 전기차는 2025년 1120만대, 2030년에는 3110만대까지 판매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10년 동안 연평균 29%의 성장이 예상되는 고속 성장 시장이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핵심이 엔진이었다면,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다. 배터리 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다. ‘K배터리’(한국의 배터리 산업) 기업들이 아직까지 본격적인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국, 유럽, 미국 등지에 초대형 공장을 계속 증설하고 있는 것도 이런 수요 계산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이 생산될 전기차 배터리들이 수명을 다하는 시기가 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수천만개의 전기차 폐배터리들이 연평균 29%씩 증가하는 속도로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당장 환경 오염 문제가 걱정이 되지만, 발빠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이미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 주행용으로 계속 사용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원료로 들어간 각종 금속들을 뽑아 쓸 수도 있지 않나’, ‘쓰레기도 그냥 버릴 수 없는 시대인데 그걸 처리하는 사업은 또 어떨까’와 같은 구상들이다.

■ 버려지는 배터리로 ‘1석 3조’

폐배터리 관련 산업·시장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만큼이나 성장성이 유망해 기업으로서는 선점 시 돈을 벌 기회가 펼쳐져 있다. 버려질 물건을 재사용·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이 핵심이다보니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환경 친화적인 ‘착한 산업’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주목받는 시대에 기업가치도 높일 수도 있다. ‘1석 3조’의 가치창출이 가능하다.

에너지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은 2030년 181억달러(약 20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기준 15억달러(약 1조6700억원)에서 11년 만에 12배에 이르는 규모로 급성장이 예상된다. 2030년에는 국내에서도 10만개에 육박하는 전기차 폐배터리가 배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차량용 배터리의 경우 한번의 완충으로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와 안전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보니 에너지 밀도가 높은 고품질이 대부분이다.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초기 성능의 70~80%로 효율이 저하되면 차량에는 계속 사용하기 어렵지만 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reuse)할 수 있다. 재사용이 힘든 배터리셀에서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희귀금속을 추출해 다시 전지의 원재료로 활용하거나 다른 용도로 가공하는 재활용(recycle)이 가능하다.

■ 달아오르는 ‘폐배터리 살리기’ 경쟁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 상위권에 있는 K배터리 업체들의 폐배터리 시장에 대한 관심도 클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충북 오창공장에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설치했다. 1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든 이 ESS는 10만㎞ 이상 달린 전기 택시에서 떼어낸 배터리로 만든 일종의 ‘대형 충전기’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의 완성차 1위 업체 GM과 합작해 설립한 얼티엄셀즈는 지난달 북미 최대의 배터리 재활용업체인 ‘리사이클(Li-Cycle)’과 계약을 체결했다. 당장 제조과정에서 폐기되는 배터리 부품·완제품에서 니켈, 리튬, 코발트, 흑연, 구리 등 원재료를 회수할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진출은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폐배터리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력을 포함한 배터리 재활용과 관련 서비스 사업에는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여러 광물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있는 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확보했는데, 이 기술을 적용하면 나머지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회수가 쉬워지고 수율도 높일 수 있다. 그만큼 새 배터리를 만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기아와 지난 1년간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실증사업을 진행해 재사용 또는 금속 회수 등의 사업성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SK는 지난 1월 ‘교체식 배터리’ 사업을 하는 중국의 ‘블루파크스마트에너지’의 지분 13.3% 투자도 단행했다. 이 회사는 통째로 배터리를 갈아끼우는 ‘스테이션’이 주요 사업 형태다. 교체용 배터리 충전에 폐배터리로 만든 ESS를 적용하는 등 다양한 사업 방안을 구상할 수 있다.

삼성SDI는 ‘배터리 재사용’ 전문기업으로 주목받는 국내 업체 피엠그로우에 2019년 지분 투자를 통해 폐배터리 관련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보다 20년가량 앞서 있는 휴대전화 소형전지의 생애주기와 관련된 노하우가 있어 앞으로 내놓을 중장기 전략에 관심이 집중된다.

양극재·음극재 등 배터리 핵심소재와 원료가 되는 광물 등에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포스코의 폐배터리 사업 행보도 눈길을 끈다. 포스코가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해 설립하는 ‘포스코HY클린메탈’은 1200억원을 투자해 전남 광양 율촌산업단지에 폐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연내 착공한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지의 배터리 공장에서 분말 형태로 파쇄된 전기차 폐배터리 스크랩을 들여와 니켈, 리튬, 코발트 등 핵심 소재를 추출할 예정이다. 같은 산업단지에 포스코가 짓기로 한 수산화리튬 생산공장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생산부터 소비, 폐기, 재활용 등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사업 기회가 열려 있는 상황”이라며 “친환경적 접근이 특히 중요해진 만큼 국내에서도 배터리 폐기와 재활용에 관련한 법령 정비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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