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교사냐, 우파 독재자 딸이냐..페루 대선 '극단의 선택'

이윤정 기자 2021. 6. 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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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페드로 카스티요, 게이코 후지모리
오차 범위 접전 ‘박빙 승부’
카스티요, 산업 국유화 추진
후지모리, 기업·상류층 대변
“누가 돼도 반대파 극렬 저항”

좌파 초등교사와 우파 ‘독재자 딸’의 대결. 6일(현지시간) 투표가 시작된 페루의 대통령 선거는 이념적으로 정반대 성향인 두 후보의 대결로 치러진다.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자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극빈층이 300만명에 달하는 페루의 민심은 양극단의 비전을 가진 두 후보에게 쏠려 있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오차 범위 내 접전을 기록하며 박빙승부를 예고했다.

이번 대선 결선은 지난 4월11일 1차 투표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한 ‘좌파’ 자유페루당의 페드로 카스티요(51)와 ‘우파’ 민중권력당 게이코 후지모리(46)의 맞대결로 치러진다. 두 후보는 이념적으로 양극단에 있다. 카스티요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세금 인상을 비롯해 주요 산업 국유화 등을 담은 헌법 개정을 공약했다. 반대로 후지모리는 자유시장 원리를 옹호하며 기업과 상류층을 대변하고 있다.

두 사람이 살아온 배경도 극과 극이다. 카스티요는 페루 북부 카하마르카의 농촌에서 문맹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육학을 전공해 2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2017년 페루 교사들이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벌인 총파업 시위를 주도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10월 자유페루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선거 경험은 2002년 지방 소도시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것이 전부다.

가난한 농부 집안 출신 교사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된 배경은 ‘자유시장 경제’ 심판론의 영향이다. 페루는 2003년 자유시장 경제모델을 도입하면서 58%였던 빈곤율이 2019년 20%로 줄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양질의 공공 서비스로 이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닥치면서 빈약한 사회보건복지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5484명) 수는 세계 최다를 기록했고, 지난해 국내총생산(GDP)도 전년에 비해 11%나 추락했다. 카스티요는 가스, 구리 사업 등을 국유화하겠다고 약속하며 서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18명의 후보가 경쟁한 1차 대선 투표에서 카스티요는 19%를 득표해 깜짝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우파 지지자들이 ‘마르크스 정권’을 막겠다며 후지모리 후보에게 집결하고 있다. 그는 유력 보수정당인 민중권력당의 대표이자 대선 3수생이다. 1990∼2000년 집권한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장녀로, 부모의 이혼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지모리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어 비호감도가 높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인권 범죄 등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고 딸인 후지모리 후보도 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선거 하루 전인 5일 오후 약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후지모리가 카스티요를 0.7%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오차범위(±1.4%) 안에 있어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사회적 불안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국제컨설팅기업 컨트롤리스크의 분석가 클라우디아 나바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선거”라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반대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 극렬하게 저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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