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스파이 양성소, 푸단대 반대” 유럽 광장서 1만명 反中 외쳤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6. 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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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가는 유럽의 중국 혐오증
중국이 유럽에 심는 ‘트로이 목마’라는 푸단대 캠퍼스 향한 반감 커져

5일(현지 시각) 낮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 ‘NO 푸단대’ ‘식민지를 만들지 말라’ 등의 반중(反中) 플래카드를 든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친중(親中)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중국 정부와 손잡고 상하이의 푸단대(復旦大) 캠퍼스를 부다페스트에 만들기로 한 계획에 항의하려 거리에 나왔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이날 시위 참가자가 1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6·4 톈안먼 사태 32주년을 맞은 바로 다음 날 유럽에서 대대적인 반중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5일(현지 시각) 낮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NO 푸단대’ ‘식민지를 만들지 말라’ 등의 반중(反中) 구호를 든 1만여명에 달하는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페이스북

이날 시위대는 가속화하는 중국의 침투에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언론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며 철권 통치를 일삼는 오르반 총리는 서방과 대립하면서 중국과 밀착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겪었던 헝가리인들이 중국의 반(反)민주주의 및 인권 탄압 행태에 거부감을 표시하며 오르반 총리를 비난하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5일(현지 시각)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중국 푸단대 캠퍼스 유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날 시위에는 야당 소속인 게르겔리 카라소니 부다페스트 시장도 참가했다. 카라소니 시장은 톈안먼 사태 때 탱크에 맞서는 청년의 사진을 들고 시내를 행진했다. 그는 푸단대 캠퍼스에 반대한다며 지난 3일 시내 4곳의 거리 이름을 ‘자유 홍콩 길’ ‘위구르 순교자 길’ ‘달라이 라마 길’ 등으로 바꿨다. 중국의 인권침해를 강조한 것이다.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헝가리의 반정부 성향 언론은 “중국 스파이 양성소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푸단대 부다페스트 캠퍼스는 이 대학이 유럽에 처음으로 만드는 캠퍼스로 2024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중국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유럽에 심는 ‘트로이 목마’라는 지적이 나온다. 캠퍼스 건설 비용 15억유로(약 2조원) 중 13억유로를 중국 정부가 대출해주고 헝가리 정부가 갚기로 했다. 건설 비용이 헝가리 정부가 연간 고등교육에 투입하는 전체 예산보다 많아 논란을 낳고 있다. 중국 건설사가 중국산 자재로 캠퍼스를 짓는다. 게다가 푸단대 캠퍼스 설립 부지가 원래 가난한 지방 출신 학생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지어주기로 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헝가리 국민을 자극하고 있다.

시위에 나온 일부 참가자는 ‘푸단대학 반대(NO FUDAN)’라고 쓴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헝가리 정부가 지난 4월 중국 국립 푸단대의 부다페스트 캠퍼스를 2024년까지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반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날 부다페스트 시위는 갈수록 확산하는 유럽 내 반중 정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헝가리뿐 아니라 독일·프랑스 등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도 중국 혐오증은 커지고 있다. 중국이 유럽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하는 데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중국이 퍼트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홍콩의 EU사무소는 4일 텐안먼 사태 32주년을 맞아 창가에 촛불을 켠 사진을 트위터에 게시하며 “EU는 보편적 인권을 옹호한다”고 했다.

유럽 주요국은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4일 EU집행위원회는 6년간의 협상 끝에 지난해 12월 타결한 중국과의 포괄적 투자 협정(CAI) 비준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런 발표를 한 지 나흘 만에 8년간 중단했던 인도와의 FTA(자유무역협정)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EU는 앞서 지난 3월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이유로 미국·캐나다와 연계해 중국 고위 관료 4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매년 한 차례 동유럽 정상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명 ’17+1 정상회의'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EU에서 떨어져 나온 영국도 중국에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의 통제 장치인 홍콩보안법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는 홍콩인들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이 다음 주 개최하는 G7 정상회의에 인도·호주·한국의 정상을 게스트로 초청한 것도 중국을 겨냥한 행보라는 해석이 많다.

중국의 첫 서방권 수교국으로서 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에 가장 우호적인 편인 스웨덴도 요즘엔 중국을 멀리한다. 2005년 유럽에서 처음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기관인 공자학원을 개설했던 스웨덴은 지난해 유럽에서 맨 처음 공자학원을 모두 없앤 나라가 됐다. 공자학원은 중국 공산당의 선전 도구라는 비판을 받는다.

유럽의 반중 기류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의 포괄적 투자 협정을 주도하며 중국과 가까운 편이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는 9월 퇴임한다. 이탈리아에서도 친중 성향이 뚜렷했던 좌파 연정이 무너지고 지난 2월 강력한 EU 통합주의자인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취임해 거국 내각을 꾸렸다. 그러나 유럽의 반중 행보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거대한 중국 시장과 멀어지는 것은 유럽에도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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