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를 외쳐 이득 보는 이들은 누구일까

한겨레 2021. 6. 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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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김만권 ㅣ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1971년은 영미 정치철학에 역사적인 해였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롤스는 이미 1958년부터 “공정으로서 정의”란 논문을 시작으로 훗날 <정의론>의 뼈대가 될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었다. 논문이 쌓여가면서 <정의론>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졌고, 이 책은 발매되자마자 정치철학의 위상과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정의론>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데는 1950~60년대 미국의 현실이 한몫을 했다. 이 당시 미국에선 실용주의와 실증주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정치철학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용주의와 실증주의는 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 인종차별을 비롯한 미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출간된 <정의론>의 첫 문장은 이랬다.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이 진리이듯 사회제도의 제1덕목은 정의다. 어떤 이론이 아무리 이치에 맞고 간결하고 명료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이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이어진 “정의는 타인의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을 거부한다”는 문장은 민주적 정의가 다수의 보호를 넘어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를 보호할 때 정당성을 얻는다는 선언이었다. 이렇게 롤스는 70년대를 ‘정의’에 대한 논쟁의 시대로 열었다. 이후 이 논쟁은 80년대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논쟁으로, 90년대엔 시민권과 다문화주의로 이어졌다. 모든 주요 논쟁의 시작이 <정의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의론>에 담긴 가장 획기적인 발상 중 하나는, 합리적 개인들이 공정한 합의 상황에 들어간다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보호망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롤스는 자신과 다른 구성원 및 사회에 대한 확고한 정보가 없는 이들이 합리적이라면, 즉 합리적 개인들의 현재와 미래가 불확실성에 처해 있다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안전망을 지어놓는 선택을 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사회적 보호 체계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타자를 향한 시혜’로부터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롤스는 정의의 주요 임무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란 점을 확실히 하며, 이런 발상이 담긴 자신의 이론을 ‘공정으로서 정의’라 불렀다.

우리 사회에서 몇년 전부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능력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에서 시작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청소하고 배달하는 노동자도 사장님으로 분류되는 플랫폼 경제의 등장, 기술의 발전이 만들고 있는 일(자리)의 가치 및 지형의 급격한 변화, 아무리 낮춰도 20 대 80으로 규정되는 분배 양극화 등을 고려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대다수에게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 중 79.1%가 자신이 중산층보다 아래라고 여긴다는 엔에이치(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2016년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의 한 대목은, 바로 이런 불확실성이 만드는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능력주의라니!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의론>을 보게 되면 롤스의 전환적 발상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롤스의 분석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해볼 근거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를 공정성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주체가 알고 보면 ‘20 대 80이라는 장벽을 넘을 수 있는 능력이나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롤스는 사회적으로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아는 이들이 공적 제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다면 그 제도가 그들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말하는 공정한 합의 상황에 소위 ‘무지의 베일’을 씌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질문부터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공정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능력주의를 외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이들은 누구일까?’

어쨌거나 지금 우리가 외치고 있는 공정함이, 롤스가 공정성에 부여했던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버리고 사회적 강자의 위치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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