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탄소중립', 얼마나 버릴 준비가 됐나

안경애 2021. 6. 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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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제철공정을 수소환원제철로 바꾸고, 경제성 있는 수소와 그린전력을 확보하는 데 30년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최근 만난 포스코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포스코는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인 철강을 탄소중립형으로 바꾸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포스코뿐만이 아니다. 석유화학, 시멘트부터 자동차, 에너지까지 전 산업현장에서 '탄소탈출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미처 벗어나기 전, 인류가 탄소중립이란 또 하나의 'C 팬데믹'에 맞닥뜨렸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탄소중립은 코로나19보다 훨씬 길고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과학기술과 자본에서 앞선 선진국이 백신을 독점하며 팬데믹에서 먼저 벗어나고 있는 것과 달리, 탄소중립은 특정 국가만의 힘으로는 도달이 불가능한 과제라는 차이점도 있다. 바이러스에 이어 탄소중립은 인류에게 더 큰 차원의 전지구적 협력과 공조를 요구하고 있다. 산업계도 특정 기업만의 변화로는 이룰 수 없는 과제다. 산업 밸류체인 전체를 아우르는 탄소중립 협업체계 구축이 필수다.

탄소중립은 엄청난 비용과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또다른 성장과 기회가 만들어질 게 분명하다. 정부는 기업들에 에너지 소비방식부터 제조공정, 제품의 형태까지 모든 것을 맡기고 규제로 접근해선 안 될 것이다. 산업계가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친환경 전기, 수소, 소재를 가시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전략 수립과 인프라 투자에 나서야 한다. 기업들은 그 기반 위에서 단독 플레이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협력사 생태계를 아우르는 탄소중립 밸류체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주체들이 탄소중립을 더 이상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의 현실 위기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에너지 소비행태부터 이동과 생활 방식까지 바꿀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은 에너지 생산부터 자원 재활용 등에 기꺼이 프로슈머로 참여할 의지를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탄소중립 주체인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끄는 상세한 가이드라인과 공조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변화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이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얘기할 때다. 지하철이나 공공건물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얼마나 열량이 소비되는지 수치로 친절히 보여주듯, 생활 곳곳에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매뉴얼이 제공되면 좋겠다. 런닝머신부터 걷기, 자전거 타기까지 일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운동 에너지를 수확하고 저장·활용하는 적정기술도 폭넓게 보급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건물이나 차량의 유리창, 고속도로 방음벽 등 각종 시설물에 바르거나 붙이는 태양광 패널이 보급되면 에너지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수직적 에너지 생산·분배·소비체계를 분산형으로 바꾸고 자원 재활용 구조를 보완해 순환경제 체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활동하는 주체들이 함께 이익을 나누는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면 탄소중립의 길이 더 평탄해질 것이다. 기업이 주도해 소비자들과 탄소중립 멤버십·협업 체계를 만드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스타벅스가 제주도 내 매장에서 시도하는 일회용컵 사용 0% 실험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 기업이 다회용컵 반납기를 제작하고, SK텔레콤이 다회용컵 회수·세척시스템 구축, CJ대한통운이 다회용컵 배송에 참여하는 기업간 협업체계가 만들어지고, 소비자는 다회용컵 보증금을 부담하게 된다.

어느 하나에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모두가 부담을 나누면서, 그 과정에서 창업과 성장, 일자리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국가 간에도 탄소를 배출하며 제품을 생산한 국가와, 이를 사용한 국가 간에 부담을 나눠 갖는 공정한 룰이 세팅돼야 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19는 '저이동·저생산·비대면 생활' 체험기회를 줬고, 힘을 모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제 탄소중립에서 또 한번의 성공 도전기를 만들 때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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