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숲전쟁 근미래사

한겨레 2021. 6. 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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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ㅣ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미얀마인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때, 한국인들은 숲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정부군의 선봉엔 산림청이 있었다. 그들이 “탄소중립 벌목정책”으로 선전포고를 한 이유가 탄소를 너무나 줄이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았다. 지령은 위에서 내려왔다. 상층부의 소위 “탄소 숫자 맞추기 전략”의 할당량을 부여받고, 국민 혈세로 벌목 사업을 확대해 관련 업계의 배를 불리고, 목재는 펠릿으로 태워 화력발전에 쓰면 재생에너지로 쳐주니 임무 완수, 윈윈이라는 기막힌 계책이었다. 반군은 소수 정예였다. 시민기자 최병성, 조경학자 홍석환, 환경운동연합, 기후솔루션 등이 정부군의 강력한 화력에 맨손으로 맞섰고, 뜻밖에 조선일보가 가담했다. 민간인들은 심정적으론 반군 편이었지만, 정부군의 아성에 도전하길 꺼렸다.

이것은 실로 비전과 패러다임의 충돌이었다. 숲 보전과 숲 개발의 이념적 간극은 시장의 자유와 규제를 둘러싼 진보·보수의 골 이상으로 깊었다. 정부군에게 숲은 개발·개량·관리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언어의 마술사였다. 숲을 나무농장으로 변형시키며 ‘산림경영·숲가꾸기·자연기반해법’이라고 신통하게 포장했다. 반면, 반군은 자연을 단순 자원으로 환원해온 인류의 성적표가 바로 작금의 기후·생태 위기며, 자연을 대하는 근본적 사고 전환 없이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

전쟁의 분수령은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확정 지으며 벌목 계획을 사실상 강행키로 천명한 2021년 7월. ‘민관협의체’라는 회유책을 미끼로 상대를 방심케 한 후 후방 공격을 가한 전형적인 정부군 전술이었다. 치명타를 입은 반군은 그러나 결집의 계기를 마련했다. 절실했던 민간인 참전이 이뤄진 것! 정부군 지원하에 끔찍한 개벌(모두 베기) 공격으로 전국의 숲이 신음하자, 보다못한 민초들이 곳곳에서 봉기했다. 거센 저항의 물결이 일며 정부군의 병참기지였던 국립산림과학원에서도 이탈자가 속출했다. 그들의 학자적 양심이, 가혹한 ‘직장 내 왕따 형’을 무릅쓰고 해외 무기를 퍼나르게 만들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핵심 인물인 미국 터프츠대학의 윌리엄 무모 박사를 선봉으로 한 “숲 놔두기”(proforestation)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반군은 첨단과학으로 재무장했다. 오래된 나무와 숲, 관리를 최소화 또는 아예 안 한 숲이 생물다양성이 높고 탄소 저장량이 많다는 정보가 융단폭격됐다. 당시 전투에 주로 사용된 2008·2014년식 네이처지 논문 외에도 “그냥 놔둔 숲이 탄소 저장 능력 두배”(에르프, 2018), “숲을 자연 재생하게 놔두면 적극적 산림경영보다 탄소 저장에 우수해”(쿡패턴, 2020) 같은 보급품을 접한 반군은 사기충천, 국민은 분기탱천했다. 다 거짓말이었구나! 방치가 나쁜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의 지배 계급도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각국 정부에 맞선 국제 숲-시민군 연합전선이 형성됐다. 이들은 나무는 물론 동식물, 균류, 균근, 미생물 등 숲의 온 생명과 동맹을 맺으며 참전 이유가 생물다양성의 수호임을 재확인했다.

전세가 역전되고 철옹성 같던 정부군이 의외로 소수였음이 드러나면서 마침내 승기가 넘어왔다. 반군은 전후 대처에 있어서 포용정책을 펴, 정부 예산을 재분배해 숲 보전에 동참하는 산주에게 보상을 하는 한편, 벌목 부담을 해외에도 전가하지 않는 공정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결국 긴 전쟁은 30년 된 나무가 아니라 30년 된 공무원들을 자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숲을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연합군으로 존중하는 새로운 이들에게 요직을 맡긴 후, 반군은 표표히 해산하며 이 말을 아로새겼다. “자리를 지키려는 자는, 정말로 지키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을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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