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에 90명 빼곡..목숨 걸고 113일 표류한 로힝야족

김윤나영 기자 2021. 6. 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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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로힝야족 난민 81명이 지난 4일 인도네시아의 바다에서 누울 공간도 없이 작은 배에 빼곡하게 앉아 있다. 안타라통신 화면 갈무리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 난민 81명이 113일간 바다를 표류한 끝에 지난 4일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구출됐다. 방글라데시의 난민촌 콕스바자르를 탈출한 이들 중 9명은 탈수증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남은 사람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인근 국가들이 이들을 받으려 하지 않아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인도네시아 국영 안타라통신은 5일 전날 로힝야족 난민 생존자 81명을 태운 배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쪽 아체주에 있는 이다만섬 앞바다에서 좌초됐다고 보도했다. 작은 배에는 난민 81명이 발 뻗고 누울 공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지붕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로힝야 난민들을 알아본 인근 주민들은 고무보트 두 대를 동원해 난민들을 섬으로 옮겼다. 한 인도네시아 주민은 “난민들이 음식 없이 며칠 동안 굶었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이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고 안타라통신에 말했다. 생존자 81명 중 11명은 어린이였고, 49명은 여성이었다.

로힝야족 90명은 지난 2월 작은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촌인 콕스바자르를 탈출했다. 이들은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말레이시아로 가려 했지만, 출발한 지 나흘 만에 엔진 고장으로 표류했다. 준비했던 식수와 식량이 동나면서 여성 6명과 남성 2명이 탈수증 등으로 숨을 거뒀다. 인도 해역에 도착했으나, 인도는 생존자들에게 물과 음식 등 구호품만 건네주고 난민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도도 말레이시아도, 심지어 떠나온 방글라데시조차도 이들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배가 장기간 표류하는 사이 난민 1명이 추가로 숨졌다.

난민들을 가장 먼저 구한 건 이다만섬의 어부들이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날 성명을 통해 “로힝야족 난민을 받아준 인도네시아 당국에 감사드린다. 81명은 이제 목숨을 구했다”고 밝혔다. 난민들에게는 임시거처가 마련됐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난민들을 계속 받아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로힝야 인권단체인 아라칸 프로젝트의 크리스 레와는 “난민들은 아직 100% 안전하지 않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쫓겨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이들이 최종 정착 목표지로 삼은 말레이시아는 로힝야 난민이 표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국경 근처 단속을 강화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2017년 미얀마 군부의 집단 학살과 방화, 성폭력을 피해 방글라데시 등 세계 곳곳으로 대거 떠났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끌던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DL)이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을 방조했다. NLD는 지난 2월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잃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기 위해 꾸려진 국민통합정부(NUG)는 지난 4일 “로힝야족을 차별하는 1982년 제정 시민권법을 폐지하고 미얀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겠다”면서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족 난민을 자발적으로 안전하게, 존엄성을 지키면서 조속히 데려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군부가 집권하는 한 로힝야족은 미얀마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다. 민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은 지난 4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사단을 만나면서 장기 집권을 위한 토대를 다졌다. 특사단이 돌아간 이튿날에도 미얀마 시민 20여명이 군부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민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달 31일, 지난 2일엔 잇따라 극우 성향의 불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지난 2일에는 몬주의 먀제디 불교사원에서 승려 위말라 부디를 만났다. 복서 출신인 위말라 부디는 로힝야족 등 무슬림 소수민족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고, 불교도 여성이 다른 종교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인물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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