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삼표산업.."풍납토성 복원" 철거 돌입하는 송파구

박태우 2021. 6. 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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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 불구 공장이전 않고 버텨
구, 7일부터 '무단점유' 토지 일부 철거
서울 송파구 풍납동 삼표산업 풍납공장 전경(동그라미 안). 앞쪽은 풍납토성 서성벽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지역이다. 송파구청 제공

서울 송파구가 7일부터 풍납동 삼표산업 풍납공장 일부 구역 철거에 나선다. 지루한 소송전 끝에 지난해 1월 소유권을 취득한 송파구는 철거 뒤 발굴 작업에 나서 한성백제 풍납토성 복원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삼표산업이 무단점유하고 있는 땅은 아직 더 남아 있고 ‘대체 부지를 찾을 때까지는 나갈 수 없다’는 태도도 확고해 본격적인 복원 사업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 레미콘 공장 근처에서 발견된 성벽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을 복원하려는 송파구와 이 자리에서 1978년부터 레미콘 공장을 운영해온 삼표산업의 갈등은 역사가 길다.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 것은 일제강점기 ‘을축년(1925년) 대홍수’로 백제시대 유물이 출토되면서부터다. 1936년 조선총독부는 성곽이 남아 있던 지역을 ‘조선고적 제27호’로 처음 지정했다. 해방 이후인 1963년 정부도 풍납토성을 사적 11호로 지정했다. 당시만 해도 풍납토성은 백제의 ‘수비성’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지만, 1997년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백제시대 주거지가 발굴되고 관련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백제의 도성이었던 위례성이라는 추정에 힘이 실렸다.

2000년 정부는 인근 지역을 사적으로 추가 지정했고, 문화재청은 2002년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관리에 들어갔다. 삼표산업이 터 잡은 지역은 성벽과 해자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복원·정비사업에 나선 송파구는 2003~2014년 삼표산업 소유 땅 16필지(2만1076㎡) 가운데 11개 필지(1만3566㎡)를 취득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삼표산업은 남은 땅 취득 협의를 중단했고, 송파구는 강제수용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송파구는 이듬해 국토교통부에 ‘서울 풍납동 토성 복원·정비사업’ 인정을 신청하고, 국토부가 이듬해 2월 이를 받아들였다.

2018년 12월 문화재청의 발굴조사로 확인된 삼표산업 풍납공장 인근 풍납토성 서성벽. 문화재청 제공

■ 법원은 “풍납토성 복원 사업 적법”

이때부터 소송전이 시작됐다. 삼표산업은 국토부에 사업 인정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내 1심은 이겼으나, 항소심과 대법원(2019년 2월)은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에 비추어 이를 복원·정비하기 위한 이 사건 사업은 그 공익성이 당연히 인정된다”며 국토부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송파구는 5개 필지(7510㎡) 수용을 위해 감정평가를 시작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송파구는 2019년 토지·건물 등 보상액 544억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하지만 영업권 손실보상액 합의는 삼표산업 미협조로 이뤄지지 않았고, 서울시지방토지수용위원회 결정에 따라 지난해 1월 5필지 땅도 송파구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삼표산업은 송파구가 공탁한 544억원을 찾아갔지만, 송파구를 상대로 토지수용재결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과 보상액이 낮게 평가됐으니 이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 송파구가 토지사용허가 연장신청을 취소한 처분과 지난 2월 무단점유한 토지에 변상액(6개월 23억원)을 부과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도 냈다.

송파구 역시 지난해 8월 삼표산업을 상대로 토지인도소송을 제기했다.

삼표산업은 2003~14년 협의해 넘긴 부지 가운데 3769㎡만 인도하겠다는 뜻을 지난 4~5월에 밝혔다고 한다. 7일부터 시설물 철거에 들어가는 토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송파구 관계자는 “토지 무단점유에 따른 변상금 부담 때문에 일부만 인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장 이전 뒤 공원 조성이 예정된 서울 성수동 삼표산업 성수공장 부지. 서울시 제공

■ 삼표 ‘이전할 부지도 없는데…’ 송파구 ‘더는 못봐줘’

삼표산업이 소송을 내가며 버티는 이유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시멘트에 물과 자갈을 섞어 만드는 레미콘은 90분이 넘으면 굳게 돼 도심 공사 현장과 접근성이 좋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서울시내에 새 레미콘 공장 부지를 마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삼표산업이 운영하는 또 다른 레미콘 공장인 서울숲 인근 성수공장 또한 땅 주인인 현대제철, 서울시 등과 내년 6월30일까지 이전하기로 협약을 맺은 바 있지만, 아직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송파구는 더는 봐줄 수 없다는 태도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일부 인도구역 외 잔여토지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인도를 요청할 것”이라며 “다양한 방안을 통해 공장 부지 전체에 대한 인도를 조속히 마무리해 문화재 발굴, 정비사업 등 지역 발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삼표산업 쪽은 송파구의 철거 작업과 공장 이전 계획과 관련해 “별도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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