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과로·괴롭힘, 스타트업서 더 심각
권한 큰 대표·상사가 가해
연봉 삭감·해고도 일상화
[경향신문]
한 스타트업에 경력직 팀장으로 입사한 A씨는 조직 개편 후 파트장 지시로 팀장 업무에서 배제됐다. 파트장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A씨에게 회의실 예약, 회의록 작성 같은 인턴 업무를 시켰다. 파트장의 노골적인 무시가 계속되자 직원들도 A씨를 피하기 시작했다. 모욕감에 A씨의 불면증과 우울증이 심해졌다. 대표에게 호소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B씨는 직속 상사로부터 “너는 할 줄 아는 게 뭐냐?” “오늘부터 밤새워서 일해 볼래?” 같은 폭언을 공개적으로 들었다. 대표는 고통을 호소하는 B씨에게 “폭행도 잘못이지만 폭행을 유발한 사람도 잘못”이라고 했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 유명 정보기술(IT)·게임 업체들의 직장 내 괴롭힘, 과로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나마 이 기업들은 노동조합이 있어 공론화라도 됐다. 노조가 없고 규모가 작은 IT 스타트업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10~11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 판교 IT·게임 노동자 80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47.3%)이 성희롱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5인 미만 기업은 72.7%, 5~99인 기업은 54.9%나 됐다. ‘최근 6개월 사이 주 52시간 이상 근무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2%가 있다고 답했는데, 역시 5인 미만 기업 81.8%, 5~99인 기업 48.6%로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스타트업 대표가 직접 괴롭힘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갑질119가 6일 공개한 제보에 따르면 한 스타트업에 다니던 C씨는 모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대표로부터 ‘생산성이 낮다’며 조롱을 당하고 시말서를 썼다. 대표는 연봉 40%를 삭감하고 아르바이트 업무를 시켰다. 대표는 “스타트업이라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된다”고 했다. C씨는 2개월간 대표에게 시달린 끝에 해고당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능력주의에 빠진 대표가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직원을 무시하고, 연봉을 삭감하고, 해고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존 대기업과 달리 수평적·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는 IT 기업의 조직문화가 후진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수운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홍보국장은 “인사평가, 연봉·인센티브·스톡옵션 책정 등 권한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지만 견제할 시스템은 없다”고 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IT·게임 업체 프로젝트는 성공 확률이 10%도 안 되다 보니 조직 개편이 잦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대기발령, 전환배치, 권고사직 등을 강요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고 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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