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바다를 물려줄 것인가

한겨레 2021. 6. 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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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 김은희 |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몇년 전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는 맨 앞의 엔진칸을 장악하기 위한 폭동을 실행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다. 달리는 열차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누가’ 엔진칸을 차지하느냐가 겨우 달라질 뿐이라는 것을. 결국 시스템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려면 열차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그 한계가 자명하다는 것을 영화는 너무 잘 보여줬고 의외의 엔딩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지난 몇년 동안 국제적으로 논의되어온 남극의 해양보호구역 지정 노력과 국가관할권이원지역, 즉 누구의 바다도 아닌 공해(公海, high seas)를 보호하는 국제 협약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 근절을 위한 국제 협약 기구에서의 관련 조치들이 제·개정되는 과정을 관찰해왔다. 이 과정 동안, 한국 정부가 취해온 입장은 해양 보호가 이미 국제 외교무대에서 소위 핫한 어젠다로 부상하는 추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국익’이 곧 국내 관련 산업 보호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답답한 면을 보였다. 이러한 국제 협상의 배경과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담당 공무원과 책임자가 자주 바뀌는 탓이다. 또한 이들의 개별 성향에 따라서 관련 환경단체들과의 관계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정부 대응을 지원하는 일부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자들은 관련 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 방향 연구에 치우쳐 있고 심지어 이것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결연함까지 보인다. 물론 몇년 전과 비교하면 해양환경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을 느끼기는 하나 너무나 미약하다. 달리는 설국열차 안에서 엔진 키를 누가 잡고 있는가에 따른 온도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특히 이번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 하마평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의 해양환경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다시금 확인시켜 참담함을 줄 뿐이다. 해양 관련 업무 경험이 전무한 기재부 출신의 공무원에게 국제사회에서 떠오르고 있는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 2030년까지 30%의 해양보호구역 지정, 세계무역기구(WTO)의 유해수산보조금 폐지 협상,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 근절, 이주 선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기본 소양과 철학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삼면이 바다임에도 해양 보호는 늘 뒷전이고 관련 산업 부흥을 위해 어떻게든 해양환경을 최대로 이용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높은 보호 수준의 해양보호구역 지정 확대를 요청하면 어민들의 반대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가 바로 돌아올 뿐이다. 해양 포유류 보호를 위한 혼획 고래 유통을 금지하는 정책 역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당장 시행할 정책이 아니라며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 명제 아래 해상풍력발전소 건설은 같은 어민들의 반대가 있어도 추진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정말 해양생태계가 기막혀할 일이다.

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한하지 않다. 자원 탐사와 채굴을 위해 심해저를 파헤치고 에너지 전환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해상풍력 건설을 마구잡이로 해대고, 오염물질을 마구 버려도, 무엇보다 남획과 혼획이 만연해도 멀쩡할 만큼 바다는 무한한 자정능력과 복원력을 갖고 있지 않다. 올해 초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필름 <씨스피라시>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너무나 잘 드러났다. 무엇보다 우리의 해양생태계는 이러한 위협에 더해 기후변화에 대응해 살아남기에도 벅찬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바다는 쓰레기로 가득 찬 ‘침묵의 바다’가 될 것이다. 해양 정책의 방향이 전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정부 부처 시스템으로 보전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하는 정책 추진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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