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꽃가루 알레르기

한겨레 2021. 6. 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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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 그래픽노블 작가

지금은 고인이 된 만화가, 오세영 선생 댁을 십수년 전에 찾아간 적이 있다. 미리내에 위치한 선생 작업실과 집은 작가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곳이었다. 집 옆에는 계곡이 흐르고 마당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과 텃밭, 닭들, 개, 정자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내가 물었다. “선생님, 여기서 작업이 정말 잘되시겠어요!” 선생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가만 앉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하루가 훅 간다고. 풍경 보느라 오히려 작업이 더 안된다고. 시골에 살면서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꽃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앞에 그렇게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아름다운 풍경은 곧 지옥으로 변한다.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이다.

컬럭 컬럭. 마른기침이 또 시작되었다. 참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심해졌다. 기침을 할 때마다 몸 전체에 진동이 왔다. 재채기도 심했다. 내 재채기 소리에 양도면이 다 쓸려갈 듯하다. 코 푸는 걸로 시작한 아침, 24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코 풀기를 계속했다. 얼굴도 가렵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숨이 가빠왔다. 나는 마치 더운 여름날 혀를 땅바닥까지 늘어트린 개가 할딱거리듯 숨을 쉬었다. 가슴을 쥐어짜며 발작 기침을 하면서 문득 ‘거북선’이 생각났다. ‘솔’도 생각났다. 아부지가 피우던 담배다. 줄담배를 태우던 아부지는 집이 떠나가라 발작 기침을 하곤 했다. 천식이었다. 내가 아부지를 닮은 걸까? 하지만 나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데. 엄니는 아부지가 기침 때문에 죽었다고 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엄니는 집에 들어오며 현관 앞에서 목에 두른 수건을 빼내어 먼지 쌓인 바지를 탈탈 털곤 했다. 곧이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거실에서는 아부지가 담배를 태우며 숨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댔다. 그럴 때면 버럭 화장실 문이 열리며 엄니가 쏘아붙였다. “앗따, 그눔의 담배 잔(좀) 그만 태랑께.” 엄니의 잔소리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옷을 입고 부엌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아부지는 귀먹은 사람처럼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엄니야 소리를 지르건 말건 아부지는 한대를 어느새 다 태우고 또 한대를 입에 물었다.

2년 전에 강화에 이사 온 시기도 5월이었다. 6월 말까지 기침, 재채기, 콧물에 시달렸다.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양약을 먹어봐도 소용이 없고 한약을 먹고 침을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나의 마른기침이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이라 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내 정신이 뭐가 어때서? 그만 좀 해. 당신이 그러니까 스트레스 더 생겨.” 정말이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남편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말과 표정에 더 화가 치밀었다. 결국 나는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모든 게 정신 탓이냐? 몸만 아프면 무조건 정신 탓이래.”

비가 내렸다. 기침이 조금 잦아들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예약을 잡으려고 전화를 했다. 알레르기 때문에 기침이 나고 콧물이 난다고 했더니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단다. 나는 전화를 끊은 후 강화읍 병원으로 향했다. 비에스(BS)병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백신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했다. 내가 기침을 해도 (물론 마스크를 한 상태에서) 의사는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비가 오니 기침이 조금 덜하더라고 설명했다. 의사가 습도 덕분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습도가 높고 더운 나라에서는 봄이어도 기침이 덜했다. 나는 아마도 덥고 습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 그는 내게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하긴 그렇게 알레르기에 시달리면서도 단 한번을 검사를 안 해봤다. 나는 피를 뽑았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를 보러 강화읍 병원에 다시 갔다. 맙소사! 알레르기투성이였다. 특히 ‘여러 종류의 풀’이 6분의 5였다. 결과가 적힌 종이를 가지고 문을 나서는데 의사가 날 불렀다. “아이고, 쌀도 알레르기가 있네요. 감자, 양파, 마늘에도요. 밥 먹고 사는 한국 사람이 쌀에 알레르기가 있으니 이걸 어떡해?” 그도 난감한 모양이었다. 나는 웃음이 났다. 쌀 알레르기라니. 그래서 밥만 먹으면 그렇게 다음날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었나? 나는 의사에게 대답했다. “선생님, 혹시 맥주는요? 저녁에 딱 한잔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거든요.” 의사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말을 해놓고 나도 내가 당황스러웠다.

집에 오는 길, 나는 여전히 마른기침을 하며 생각했다. ‘아, 갑자기 상추쌈이 땡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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