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기사 댓글엔 '인권' 없고 중국·문재인·원전·잘못

김민제 2021. 6. 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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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네이버·다음 댓글 분석
"기후위기는 기술·외교·정치 아닌 인권 위협 당면 문제"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달린 네이버(왼쪽)와 다음(오른쪽) 뉴스에 달린 ‘기후’ 관련 댓글의 빈도수 분석 결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데이터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에 의뢰해 진행했다.

2019년 12월10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낸 성명에서 “기후위기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를 포함한 국내외 기후·환경·인권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인간의 주거권, 건강권, 생명권 등 기본권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이와 인식을 같이 할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데이터 사이언스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에 의뢰해,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네이버와 다음 기후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 6만7000여건을 분석했다. 여론의 한 면인 댓글을 통해 기후위기와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그 결과 ‘기후’와 ‘인권’이 동시에 언급된 댓글은 단 7건에 그쳤다. 반면 ‘기술’ ‘원전’ ‘중국’ 등이 주요 단어로 등장했다. 기후위기를 인류 생존이 달린 인권 문제로 보기보다는 정치나 외교 정책, 기술적 해결과 연관된 문제로 받아들인 셈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네이버와 다음에 올라온 기후, 에너지, 인권 관련 기사 1만4618건의 댓글 125만6652건을 취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댓글 크롤링(웹에 분산된 정보를 검색 키워드를 이용해 긁어모으는 기술)이 가능한 언론사(45개 매체) 기사 중 기후 관련 기사는 1487건, 여기 달린 댓글은 6만7072건이었다. 전체 기사에 작성된 댓글 가운데 ‘인권’ 관련 단어와 ‘기후’ 관련 단어를 함께 언급한 댓글은 9건에 불과했다. 기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로만 범위를 좁히면 이러한 댓글은 7건이었다.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달린 네이버(왼쪽)와 다음(오른쪽) 뉴스에 달린 ‘기후’ 관련 댓글의 보나시치 분석 결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이처럼 인권과 기후 문제를 연관시킨 댓글은 극히 드문 반면, 정치나 외교와 관련된 댓글은 빈번하게 등장했다. 기후 관련 기사 댓글을 대상으로 빈도수 분석을 해보니,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는 네이버에서는 ‘중국’ ‘코로나’ 등이었고, 다음에서는 ‘걱정’ ‘코로나’ 등이었다.

특히 네이버 뉴스에 달린 댓글의 경우, 그룹 네트워크 분석(각 단어가 함께 언급되는 빈도 등을 분석해 단어 간 연결성을 확인하는 작업) 결과 ‘중국’의 직접 연관어로 ‘잘못’이, ‘문재인’의 직접 연관어로 ‘세금’과 ‘낭비’ 등의 부정적 키워드가 나타났다. 또 ‘중국’과 ‘문재인’은 서로 연결돼 있어다. 아르스 프락시아 쪽은 “네이버 댓글에서는 ‘기후’가 외교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표현되었음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해 중국을 비판하는 중국 책임론, 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기후위기는 전세계 모든 사람의 인권과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지구 운명이 걸린 기후위기를 단순히 현 정권의 외교 담론으로 수렴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고 했다.

이와 달리 기술 발달이 기후위기 대응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일부 엿보였다. 단어가 가지는 객관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수인 ‘보나시치 영향력’(Bonacich Power)을 평가해보니, 네이버에선 ‘원전’, 다음에선 ‘걱정’이 영향력 높은 단어로 나타났다. 단어가 갖는 잠재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피비에스(PBS·Potential Boundary Spanner) 분석 결과, 네이버에선 ‘문제’, 다음에선 ‘기술’이 향후 중요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은 단어로 나타났다. 또 주요 단어가 속한 문장과 문단을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단어에 대한 긍정·부정 감성을 확인했더니, 대부분의 단어에서 부정 감성이 지배적이었지만 ‘에너지’ ‘기술’에 있어선 비교적 높은 긍정 비율을 보였다.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달린 네이버(왼쪽)와 다음(오른쪽) 뉴스에 달린 ‘기후’ 관련 댓글의 PBS 분석 결과.

조사를 진행한 김예린 아르스 프락시아 연구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후위기가 국내 정치나 외교 문제의 일환으로 여겨진다는 점, 이를 다루는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낸다는 점, 기술을 기후위기 해결의 키워드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댓글 분석을 통해 확인된다”고 말했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기후위기는 현재 당면한 긴급한 인권의 문제이지만,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나 경각심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가 기술과 외교, 정치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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