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따스한 손길 '커피의 신맛' [박영순의 커피 언어]

향미전문가를 길러내는 CIA플레이버마스터과정에 준비된 다양한 과일과 허브들. 단맛이 함께 들어 있어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신맛이 감지될 때 커피의 품질이 좋다고 평가한다.

“커피에서 신맛이 나야 좋다”는 믿음이 제법 널리 퍼졌다. 잠을 쫓으려 커피를 찾던 데에서 향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커피 음용 문화가 와인이 이룬 것처럼 고급화하는 모습인데, 일각에서 이를 상술로 이용하기 때문에 커피 입문자들로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신맛은 특정 구조를 가진 화학물질이 혀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해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고, 이를 뇌가 감지함으로써 갖게 되는 감각(sensation)이다. 혼란은 감각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각(perception)에서 비롯된다. 단맛이 연상되지 않고 식초처럼 자극적인 산도(pH)만 감지되면, 한마디로 뱉어야 할 좋지 않은 커피이다. 커피를 볶은 지 오래됐거나 보관을 잘못해 산화하면 자극적인 신맛이 두드러진다. 신맛에 대해 이러한 구별을 하지 않고, ‘신맛이 나야 스페셜한 커피’라는 잡음이 가득하다.

신맛은 쓴맛과 함께 이를 받아들이고 감상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한 미각이다. 상한 음식에서는 신맛이, 독이 들어 있을 때는 쓴맛이 부각되게 함으로써 몸을 보호하도록 우리가 진화한 덕분이다. 산성도(acidity)가 낮아지면 우리의 관능에 경보가 울리면서 ‘시큼하다’거나 ‘상한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오며 인상을 쓰게 된다. 이처럼 부정적인 신맛은 커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워(sour)’라고 말하는 것으로 약속이 돼 있다. 우리말로는 ‘시큼하다’로 소통되면서 커피의 품질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반면, 산성도를 뜻하는 어시더티(acidity)는 긍정적인 신맛을 나타내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말로 ‘새콤하다’거나 ‘상큼하다’로 풀이되면서,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가 갖춰야 할 중요한 면모인 것으로 대접을 받는다. 스페셜티커피협회(SCA), 컵오브엑설런스(COE) 등 전문가단체들이 주관하는 커피생두품질평가에서 산미를 평가하는 항목이 ‘acidity’로 표기된 것이 이런 현상을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좋은 커피는 모두 신맛을 지니고 있다”는 항진명제에서 신맛은 단순히 수소이온의 농도에 따라 감지되는 산성의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지각을 넘어 인간 고유의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지(cognition) 단계에서 감성으로 형성된다. 품질이 좋은 커피가 지닌 단맛이 바탕을 이루는 가운데 발현되는 신맛은 ‘과일 같은 맛’이다.

좋은 커피가 풍기는 과일 뉘앙스는 다양하다. 시트론, 레몬, 오렌지, 귤, 파인애플, 자몽, 사과, 포도, 배, 살구, 복숭아, 자두, 망고, 구아바, 패션프루트, 파파야, 코코넛, 블랙베리, 크랜베리, 아사이베리, 멀베리(오디) 등 중 어느 하나를 떠오르게 하는 커피라면 마음껏 즐겨도 좋다.

과일 맛은 커피나무가 해발 2000m를 넘나드는 고지에서 심한 일교차를 겪으며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속성인 만큼 찬사를 보낼 만하다. 이런 면모는 거의 평지에서 따뜻한 환경에서만 자라난 커피들에서 찾기 힘들다. 과일을 떠오르게 하는 커피의 신맛은 고난을 이겨낸 커피를 격려하는 신의 따스한 손길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