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故 김재현 기관사, 철도인 최초 국립 서울 현충원 안장된 사연

서지현 2021. 6. 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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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재현 기관사의 의로운 희생이 회자됐다.

6월 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철도인 최초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故 김재현 기관사의 삶이 그려졌다.

이에 대전철도국 소속 김재현 기관사와 부기관사 현재영, 황남호가 자원했다.

이후 김재현 기관사는 철도인 최초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됐고 1978년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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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서지현 기자]

故 김재현 기관사의 의로운 희생이 회자됐다.

6월 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철도인 최초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故 김재현 기관사의 삶이 그려졌다.

앞서 지난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이 기습 남침하며 한국 전쟁이 발발,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다. 당시 이들은 3일 만에 서울과 수원을 점령했고, 20여 일만에 금강지구를 점령했다.

당시 미 육군 24사단은 대전 방어를 위해 나섰으나 포위되자 영동으로 후퇴했다. 이 가운데 미 24 사단장을 맡았던 윌리엄 딘 소장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철도를 이용해 그를 구출 하기 위한 작전이 제안됐다. 이에 대전철도국 소속 김재현 기관사와 부기관사 현재영, 황남호가 자원했다.

마침내 7월 19일 오전 미카 3형 129가 영동역에서 출발해 이원역에서 미군 특공대원 33명을 태우고 대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세천 역 인근 구정리 터널을 지나던 당시 인민군의 습격을 당해 특공대원 10여 명을 잃었다.

가까스로 이들은 대전역에 도착했으나 윌리엄 딘 소장의 행방을 찾지 못해 작전은 실패로 끝난 뒤 귀환하게 됐다. 문제는 판암역 인근을 지나며 시작된 인민군의 집중 사격이었다. 이로 인해 8발의 총상을 입은 김재현 기관사가 사망했다. 결국 대신 조종석을 맡은 황남호의 운전으로 옥천역에 도착했다. 황남호는 생존했으나 큰 부상을 입었고, 김재현은 사망, 특공대원 중 생존자는 단 한 명이었다.

세간에 따르면 한국 전쟁 당시 무기도 없이 전쟁터로 나가야 했던 기관사는 약 2만여 명으로 이 중 278명이 순직했다. 당시 군인, 경찰에 이어 가장 많이 사망한 직군이라고.

윌리엄 딘 소장은 인민군 포로로 붙잡혀 3년 간 포로 생활 끝에 1953년 전쟁이 끝나며 포로 교환으로 미국으로 귀환했다. 이후 김재현 기관사는 철도인 최초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됐고 1978년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어 2012년 미 국방부 최고 훈장인 '특별 민간 공로훈장'이 김재현 자손들에게 전달됐다. 3년 뒤인 2015년엔 현재영 황남호 역시 훈장을 수여받았다. 현재 대전 동구 판암동엔 김재현 순직비가 자리해 있으며 대전역 동광장엔 세 기관사 공로를 기리는 동상이 설립돼 있다.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뉴스엔 서지현 sjay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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