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수십조 쓰는데.." 남북이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 [박수찬의 軍]
국방비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한국의 군사력 평가 순위도 높아졌다. 지난해 미국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러시아·중국·인도·일본에 이어 6위로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전력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인 북한군을 압도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흥미로운 부분은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GFP에서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군사력은 25위로 평가됐다. 25위인 북한이 6위인 한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재래식 전력이라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 문제는 핵이다.”
남북 군사력 균형에 대한 질문에 군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답이다. 한국군은 1970년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한 직후 소총과 야포 등의 국산화를 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국산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거액을 들여 미국과 유럽 등에서 무기를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F-35A 스텔스 전투기, P-8A 해상초계기, F-15K 전투기 등은 사업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른다.
하지만 핵무기를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북한을 100% 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핵무기 사용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지난 3월 모습을 드러낸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은 사거리가 600㎞로 늘고 파괴력은 더 강해졌다.
사거리 600㎞면 남한 전역이 타격권에 들어간다. 청주 기지 F-35A, 대구 기지의 F-15K 전투기 등 한국군 핵심 전력과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할 미군이 들어올 부산항, 김해 공항 등이 포함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평양을 공격하면 과도한 무력사용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북한이 모든 종류의 미사일과 핵무기를 동원해 서울과 미 본토를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핵을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제한 핵전쟁’이다. 전쟁을 어떻게,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선제 핵공격을 감행하는 북한이 된다.
전쟁 주도권을 내주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전례는 없다. 북한 비핵화가 한국의 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재래식 무기로만 전쟁을 벌여도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압도한다는 보장은 없다.
한반도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면 장비가 열악한 북한군도 전투에서 한·미 연합군을 이길 수 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미국이 아프간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군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공세적 태도로 한반도 주도권 장악을 노려왔다. 연평도 포격 도발과 천안함 피격 등을 통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지역에서 한국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도 과시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에는 경제난 속에서도 신형 전차와 미사일, 대구경방사포 등 신무기 개발에도 힘을 기울였다. 열병식에 등장하는 북한군의 모습을 보면, 중국이나 러시아 못지 않은 현대적인 형태를 갖췄다.
이렇게 되면 재래식 무기로 한·미 연합군에 맞서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양측이 충돌할 경우 북한군이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빈약한 경제력 때문이다.
북한군의 대구경방사포는 위성항법체계(GPS)를 사용해 지상 표적을 정밀타격한다. 하지만 기존 로켓보다 생산비가 비싸다.
대량생산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방사포를 싣고 다닐 특수차량을 확보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회피해야 하는데, 이는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열병식에 등장했던 최신 장비들은 북한군의 정예부대를 중심으로 배치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북한 공군이 공식적으로 전투기를 수입한 것은 1980년대가 마지막이다.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중고 미그-21 전투기를 들여왔지만, 불법적으로 반입한 것이다. 미그-29 20여 대는 어느 정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으나, 나머지 기종들은 노후화가 심하다.
반면 한국은 F-15K, F-35A,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이지스 전투체계, KC-330 공중급유기 등을 자유롭게 도입하며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공군력 격차를 좁히기가 어려운 셈이다.
북한이 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방법은 선전전이다. 대외선전매체를 동원해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북한의 비난 성명을 모아놓으면 한국군 전력증강사업이나 훈련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은 비난 공세에 매달리고 있다. 남한 내 반대 여론을 자극해 전력증강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다.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3일 한국 공군의 레드플래그 훈련 참가를 두고 “남조선 군부가 미국의 대조선 침략과 인도태평양 전략 실현의 돌격대 노릇에 환장해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달에는 한국군의 화랑훈련과 한미 연합 공수화물 훈련에 대해 “제 눈을 찌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간 군사적 긴장은 크게 완화됐다. 휴전선과 북방한계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위험도 감소했다. 하지만 휴전선을 사이에 둔 대치 국면은 변함이 없다. 양측이 군사력 강화를 지속하는 이유다.
북핵 협상을 진전시켜 비핵화를 달성하거나, 남북이 군사공동위원회를 개최해 상호 군비통제를 실현하지 않는 한 양측의 군사력 경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단기간 내 군비통제 등이 가시화될 가승성은 낮다. 이에 따라 군사 분야에서 남북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경쟁, 견제는 당분간 치열하게 지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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