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여 타낸 '고용지원금' 1년사이 10배 늘었다

곽래건 기자 2021. 6.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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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업주, 해고 막는 정책 악용

제주의 한 호텔은 지난해 다섯 차례에 걸쳐 3200만원 규모의 ‘고용유지지원금’을 타냈다. 이 지원금은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이 직원을 쉬게 하면 정부가 직원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직원 20명 규모의 이 호텔은 코로나 여파로 손님이 줄어 직원들이 쉬게 됐다며 지원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이 멀쩡히 근무를 했다. 호텔은 직원들에게 월급도 정상적으로 지급했다. 호텔이 중간에서 지원금만 받아 챙긴 것이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는 곳이 늘고 있는 가운데, 서류를 조작해 직원들이 쉰 것처럼 꾸미는 등 방식으로 지원금만 타가는 부정 수급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발(發) 해고 사태를 막겠다며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규모를 늘리고 있지만 곳곳에서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 부정 수급

◇지원금 따라 부정 수급도 덩달아 급증

4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유지지원금 부정 수급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879건, 169억6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고용부에 적발된 것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가 회사 사정으로 직원을 휴업·휴직시키면 근로기준법상 평균 임금의 70% 이상에 해당하는 휴업·휴직 수당을 직원에게 줘야 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이 수당의 최대 90%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경영이 어려워지자마자 바로 직원을 해고하지 말고 휴업·휴직을 하며 일단 버텨보라는 취지다. 회사 입장에선 직원을 자르지 않아도 인건비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이 대거 이용했고, 정부도 코로나 고용 대책 중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에 2019년 669억원이었던 지급 규모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2조2778억원으로 34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1~5월에도 6523억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부정 수급도 덩달아 늘고 있다. 2019년 28건(8억원)이었던 부정 수급은 2020년 534건(93억600만원)으로 건수 기준 19배 늘었다. 올해 1~4월은 345건(76억5700만원)으로 이미 작년 전체 적발 건수의 64%에 육박하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234건), 도·소매업(127건), 운수 및 창고업(113건), 숙박 및 음식점(105건) 등의 순으로 부정 수급 적발 건수가 많았다.

◇드러나지 않은 부정 수급 더 많을 듯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가장 흔한 사례는 직원들이 쉬는 것처럼 허위로 신고하는 것이다. 한 결혼정보업체는 직원들을 한 달간 유급 휴직하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에게 한 달 중 보름가량 출근해 일하도록 지시했다. 두 번째 유형은 직원이 아닌 사람을 직원인 것처럼 꾸며 지원금을 부풀리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의 한 전세버스업체는 대표의 가족들을 회사 직원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지원금을 더 타냈다가 적발됐다. 세 번째 유형은 쉬는 직원에게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 준 후 일부를 반납받는 경우다. 직원 입장에서는 손해지만, 고용 상태가 불안해질 수 있어 회사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전남의 한 자동차 제조업체는 근로자들에게 지급한 수당을 현금인출기에서 인출하게 해 돌려받았다가 고용부에 적발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내부 제보가 아니면 적발해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고용부는 업체들이 실제 휴업·휴직을 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데, 일부 업체는 직원들에게 ‘고용센터에서 전화가 오면 출근을 안 하고 휴직 수당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하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 드러나지 않은 부정 수급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부정 수급이 적발되면 받은 지원금의 2~5배를 추징당하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박대수 의원은 “일부 사업주에게서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고용부가 이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단속에도 더 힘을 써야 한다”고 했다. 고용부는 “이른 시일 내에 자진 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일제 점검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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