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출퇴근러에게 건네는 온기 [책과 삶]
[경향신문]
빈틈의 온기
윤고은 지음
흐름출판 | 340쪽 | 1만5000원
세상일에 홀려 정신을 잃지 않는 나이, 불혹. 23세 때 소설가가 되어 18년을 살아온 저자는 40대에 접어들고서야 자신의 세계를 온전한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밤의 여행자들>을 쓴 소설가 윤고은이 첫 산문집을 출간했다.
저자는 자신에게 ‘아홉개의 윤고은’이 있다고 말한다. 유독 눈에 띄는 건 7번 ‘행복을 표현하는 나’다. “행복감을 알사탕처럼 오래 녹여먹는 편이 아니라 활달하게 깨물어야 한다”는 그는 ‘행복의 저작근’을 이용해 행복을 열심히 씹고 소화한다. 아주 작은 빈틈에서도 일상의 행복을 길러낸다. 3번 자아인 ‘기록하는 나’는 이를 휴대폰 메모장, 이면지, 냅킨 등 손에 닿는 무엇인가에 기록한다.
라디오 진행자인 그는 분당에서 일산까지 출퇴근을 하는 4시간을 여행에 빗댄다. “길에 떨어진 머리끈을 발견하면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소개답게 저자는 길에서 주운 다정한 빈틈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지하철을 놓칠까 자전거 바퀴에 끼어 엉망이 된 스웨터를 가방에 구겨 넣은 채 지하철로 돌진하고, 자주 가는 카페에선 손소독제로 오인한 시럽으로 열심히 테이블을 닦고, 요가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운동효과가 난다고 믿는다.
내면으로만 골몰하는 에세이는 아니다. 저자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무채색의 일상에 알록달록한 색채를 입힌다. 말 못할 슬픔으로 눈물 흘릴 때 말 없이 귤 하나를 건네 위로하는 할머니, 이국의 여행자를 위해 친숙한 고향 노래를 틀어주는 툭툭 운전자,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운 이들을 위해 손톱 위에 반짝이는 눈 결정 장식을 올려주는 네일숍 직원…. 저자는 조용히 이들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기록한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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