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트러블 - 주디스 버틀러 [상현의 내 인생의 책 ④]

상현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공동행동’ 활동가 2021. 6. 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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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자, 살아남자

[경향신문]

대학에 다니던 2010년대 초반, 대학사회와 학생운동계에서는 남성 중심 문화가 강했다.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가 불거져도 제대로 된 해결 절차도 없고, 피해자가 고립되는 일이 허다했다. 나를 비롯해 그런 상황에 신물이 난 몇 명의 학생들이 페미니즘 공부를 해보자며 여성주의 학회를 만들었는데, 이 책 저자의 이름을 본떠 ‘주디’라 명명했다. 아직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기 전이어서 학회의 생존을 위해 ‘화장 안 하는 예의없는 사람 환영’ ‘섹스?(섹스와 젠더의 섹스다) 아직 몰라? 알려줄게’ 등 자극적 문구를 달고 회원 모집에 골몰하던 때였다.

<젠더 트러블>은 섹스를 알려주는 책이다.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섹스’와 문화적으로 구성된 ‘젠더’를 구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섹스 또한 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내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섹스 역시 젠더가 작동된 결과이며, 이차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어 여성이란 범주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며, 젠더는 무한히 변화하며 자유롭게 떠도는 인공물이며, 남성성/여성성은 강압적인 젠더 규범을 통해 만들어지는 복사본이기에 각자가 수행하는 것은 패러디적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남자/여자로 특정하기 어려운 성정체성을 고민하던 나였지만, 이러한 만남을 통해 ‘혼란스러운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의 성정체성을 규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유난하게 여겨지거나 음란하다고 매도되는, 퀴어퍼레이드에서의 ‘자기표현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되었다.

그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차별과 폭력을 겪는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아픈 죽음이 있다. 다양한 이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들, 세상에 트러블을 일으키는 이들이 오래오래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상현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공동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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