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없이 세계 첫 히말라야 8천미터급 '완등' 나섭니다"

정대하 2021. 6. 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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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산악인 김홍빈 원정대장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콜핑 제공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콜핑 홍보이사)씨가 장애인 세계 최초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8천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 14좌 중 그는 이미 13곳좌를 등정했다. 마지막 남은 산이 ‘브로드피크’(8047m) 정상이다. 지금까지 43명의 산악인만이 14좌를 완등했다. 그는 손가락 하나도 없이 강한 의지로 고산 등반에 나선다. 이미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그는 1일 “꿈을 버리지 않고 살기 위해 산에 오른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민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2021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는 1일 오후 5시30분 광주장애인국민체육센터에서 발대식을 했다. 김 원정대장과 30년 이상 등반을 함께 한 유재강·정득채·정우연 대원이 동행한다. 이들의 여정을 <한국방송>(KBS) 영상팀 2명이 담는다. 이들은 염암 월출산·해남 대둔산 등지에서 암벽 훈련을 했고, 겨울엔 스키 훈련을 소화했으며, ‘워킹’으로 팀워크를 다졌다.

브로드피크 원정대는 6월14일 출국해 7월 중·하순께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번 등정에 성공하면 김 대장은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를 모두 오르는 산악인이 된다.

14개좌 중 마지막 ‘브로드피크’ 원정
1일 발대식·14일 출국·7월중 ‘정상’
유재강·정득채·정우연 대원 ‘동행’

1991년 북미 매킨리 단독 등반때 조난
2009년 세계 7대륙 최고봉 모두 올라
“꿈 잃지 않고 살고자 다시 산으로”

‘2021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가 1일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지역 장애인단체 대표들의 격려 속에 광주장애인국민체육센터에서 발대식을 했다. 광주광역시 제공
브로드피크 원정대 발대식이 열린 1일 정진완(오른쪽)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이 김홍빈 대장에게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광주시장애인체육회 제공

김 대장에게 산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1983년 대학 산악부에 입회하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대한산악연맹에서 주최하는 국외 원정 등반대에 선발될 정도로 산악 유망주였다.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경량 등반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람이 이렇게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할 때 꿈에 설핏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16시간에 걸친 구조대의 노력으로 목숨을 구한 그는 10일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프로비던스병원 의료진은 일곱번의 수술 끝에 그의 열 손가락을 절단했다. 김 대장은 “손목을 절단하지 않고 지금의 ‘손’을 만들어준 의사 오말리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는 고통이었다. “처음에는 창피하고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화장실이나 문밖에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기구를 이용해 양말을 혼자 신고, 혼자서 속옷을 입었을 때, 대·소변을 혼자 가렸을 때 너무나 기뻐서 혼자 울었다”고 회고했다. 손가락 없이 글씨를 쓰는 법을 배웠고, 운전면허증도 땄다. ‘생존법’을 익힌 김 대장은 1997년 ‘내가 잘하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산으로 돌아왔다. 2009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7m) 등정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올랐다.

2015년 발가락이 없는 스페인 등반가 팀과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에서 함께한 김홍빈(왼쪽 둘째) 원정대장.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위해 마지막 브로드피크에 도전하는 김홍빈 원정대장.
2019년 히말라야 8000m급 13번째좌 가셔브룸을 등반하고 있는 김홍빈 원정대장.

산은 패배감을 물리칠 자신감을 심어줬다. 김 대장은 밧줄 하나 잡을 수 없는 손이기에 수직의 빙벽에서는 발과 다리만을 사용한다. 산악인 동료들이 그의 ‘열 손가락’처럼 도움을 줬다. 산악인 후배 조벽래씨는 잘린 열 손가락 부위에 찬 기운이 잘 전달되지 않도록 비전도체 소재로 만든 ‘아이스 툴’을 고안해 제작했다. 김 대장은 이 장비로 빙벽의 얼음을 찍고 올라간다. 김 대장은 “비장애인은 신발 끈을 묶는 게 쉬운 일이지만 나는 도구가 없으면 못 한다. 동료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1%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다. 알파인 스키 장애인 국가대표에도 뽑힌 그는 사이클로도 장애인 전국체전에 여러차례 입상했다.

그에게 산은 “겸손이고, 희망”이다. 김 대장은 “살아서 숨 쉬는 것은 정말 몸저리는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곳이 바로 산”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산을 등정해 발 밑에 두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이 ‘김홍빈 산악사진전’이라는 부제를 붙여 낸 <산 넘어 삶>이라는 책엔 “삶에서도 산에서도 언제나 목표는 정상보다 베이스캠프인지 모른다”고 적혀 있다.

김 대장은 “등산도, 삶도, 사회도 안전하고 편안함을 주는 베이스캠프에서 충전하고 용기를 얻어 또 다시 도전한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만들기’와 함께 장애인·청소년들과 꿈을 나누는 것도 사회가 베이스캠프처럼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산에 오르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행복합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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