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청소만 했는데 조회수 500만..남의 청소에 왜 열광할까

이우연 2021. 6.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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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청소하는 유튜브 인기
"청소 보며 안도감과 대리만족 느껴"
'쓰레기집' 정리하고 세차하는 영상도
집에서 청소하는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 ‘하미마미’ 화면 갈무리.

부엌에서 전기밥솥을 열고 내솥을 닦는다. 이어 아침 식사를 마친 식기를 설거지한다. 물을 끓이면서 동시에 수증기를 이용해 주방 벽과 씽크대 곳곳을 닦는다. 9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청소와 살림을 하는 이 영상의 조회 수는 31일 기준 523만회다.

유튜버 ‘하미마미’(34)의 유튜브 영상은 닦고 쓸고 정리하는 청소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 하는 일이지만 72만명의 구독자가 그의 청소를 함께 보고 있다. 댓글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각국의 언어가 등장한다. “청소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영혼을 정화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청소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이 영상을 정말 좋아한다” 등의 반응이 여러 나라 언어로 적혔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청소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야외활동이 제한되면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청소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정 열쇳말의 검색 빈도를 0에서 100까지로 보여주는 구글트렌드를 보면 한국에서 ‘청소’의 웹 검색량은 2019년에는 34∼84였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된 지난해 5월 88, 6월 92를 기록하는 등 최고치를 경신했다.

청소 영상을 보는 이들의 마음은 ‘대리만족’과 “나도 해볼까” 사이 어딘가에 있다. 하미마미를 비롯해 다양한 유튜버들의 청소 영상을 주기적으로 본다는 이정선(29)씨는 “청소 후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며 “보다 보면 나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코로나로 집에 더 자주 있게 돼 몇 번 따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미마미도 처음엔 평범한 자신의 청소 영상에 왜 많은 사람이 열광할까 궁금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뭔가를 크게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고 서로 비교하며 뒤처지는 기분을 자주 느끼잖아요. 그런데 더러워진 곳을 닦고 정돈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 사람의 일상도 나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청소는 일상에서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하나기도 하죠. 코로나로 불안한 와중에 정직하게 결과물을 내놓는 청소를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요.”

유튜브에서 ‘청소’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갈무리.

집 청소 영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 집을 청소하는 등 청소 전후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줘 쾌감을 느끼게 하는 유튜브 채널도 있다. 구독자 26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로동복어’는 전직 모텔 아르바이트생이다. 처음엔 아르바이트 후기를 이야기하는 영상을 올렸지만 지난해 7월 코로나19 확산세로 해고된 뒤 남의 모텔을 방문해 청소하는 영상, 자신이 사는 옥탑방의 세탁기와 에어컨을 분해해 청소하는 영상을 올렸다. “누군가 청소하는 걸 누워서 본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 일인지 몰랐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폐차 직전의 차를 세차하는 영상도 있다. 최고 조회 수가 180만회를 넘은 세차 유튜브 ‘세차요정 밋돌세’를 즐겨본다는 김아무개(21)씨는 “자차는 없지만 오로지 신기해서 본다”며 “세제로 시트를 불려서 거품을 빨아들이고, 드릴에 끼운 솔로 바닥 먼지를 빼낼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clean with me(같이 청소해요)’ 콘텐츠가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청소 브이로그(V-Log)를 올리는 제시카 툴 등의 채널을 소개하며 청소에 동기를 부여하는 영상이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심리학자인 얼리샤 클라크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코로나 위기 속 청소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 콘텐츠가 그동안 중요성에 비해 ‘대접’받지 못해온 가사노동을 재조명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집을 청소하는 것은 자주 조롱을 받는 지루하고 힘든 일”이라며 “(청소 관련) 인플루언서는 가정부가 하는 일을 존경받을 만한 숙련된 육체노동으로 재구성한다”고 지적했다. 하미마미도 육아휴직 동안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청소와 같은 가사노동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자존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며 제가 하는 일(청소)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해주는 댓글 반응들을 볼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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