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호에서 담배 피우는지 잡아주세요!"

김태주 기자 2021. 5. 31.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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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으로 아파트서 분쟁 급증, 계단·주차장 등 공동구역은 단속
내집 흡연은 제재할 권한 없고 '범인' 잡기도 어려워 관리소 골치

서울 양천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직장인 양모(35)씨는 재택근무를 시작한 작년 9월부터 ‘층간 담배 냄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몇 층 주민이 뿜은지 모를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훅 찌르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이 살짝이라도 열린 날엔 냄새가 온 집에 퍼진다. 없던 두통까지 생겼다. 양씨는 “코로나 이전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회사에 출근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며 “그런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흡연실’에 앉아 있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고 했다. 참다 못해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건물주에게 호소했지만, 반년 새 다섯 차례나 “조치를 해주겠다”는 말뿐이고 달라진 건 없다.

"몇 호에서 담배 피우는지 잡아주세요!"

아파트·오피스텔에서 ‘층간 담배 냄새’ 분쟁이 늘고 있다. 최근 날이 화창해 베란다 창문을 여는 계절이 되면서 담배 냄새 민원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가해자’가 비교적 명확한 층간 소음과 달리 담배 냄새는 누가 피웠는지는 잡아내기가 쉽지 않아 문제 해결이 더 어렵다.

30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층간 담배 냄새(간접흡연) 피해 민원은 2844건으로 2019년(2386건)보다 19.2% 늘었다. 이날 본지가 서울 등 전국 맘카페 10곳을 살펴보니, 지난 두 달간(4~5월) 층간 담배 냄새 피해를 호소하는 글만 100건이 넘었다. “날이 좋아 베란다 창문을 열고 빨래를 말리는데 담배 냄새가 밴다” “백일도 안 된 아기가 있어 더 신경이 쓰인다” 같은 내용이다.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가 늘어난 것이 이런 민원 증가의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층간 담배 냄새’는 금연 아파트라도 피해가지 못한다. 거주 가구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금연 아파트로 지정할 수 있지만 복도·계단·엘리베이터·지하주차장 같은 공동 구역에서 피우는 것만 단속 대상이다. 내 집 베란다, 화장실 등 ‘사유지’에서의 흡연은 막을 수 없다.

모든 항의는 경비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쏟아진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이들은 입주자에게 실내 흡연 중단을 ‘권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원래는 ‘실내 흡연 자제 방송’을 한 달에 한 번쯤 했는데, 코로나 이후엔 민원이 부쩍 늘어 요샌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것 같다”며 “실내 흡연자가 누군지 모르다 보니 방송을 하거나, 호소문을 엘리베이터에 붙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간혹 ‘가해자’를 특정한다 해도 “내 집에서 내가 피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이를 제재할 권한은 없다.

지자체나,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도 ‘층간 담배 냄새’ 민원이 잇따르지만 뾰족한 해결 방법은 없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정남숙 과장은 “층간 담배 냄새를 제재할 법적 규제가 없어 시나 구 차원에서도 해결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했다.

‘사적 제재’에 나섰다가 거꾸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황모(43)씨는 작년 12월부터 ‘층간 담배 냄새’가 지속되자, 실내 흡연이 의심되는 집에 편지를 남기고 경찰·국민신문고에도 신고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그 집을 찾아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나와!”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 집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오히려 황씨에게 “이유가 뭐가 됐든 남의 집을 두드리거나 항의하는 행위를 하면 주거침입죄로 잡혀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법으로 단속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며 “시민 개개인의 자율적인 절제와 자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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