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상 주거침입 잇따르는데.. 법원은 집행유예·벌금형 남발

조희연 입력 2021. 5. 30. 19:18 수정 2021. 5. 3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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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세계일보가 여성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 주거침입 단독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서울중앙·동부·서부·남부·북부지법에서 선고가 난 57건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5건(44%)이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18건(32%)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실형(7건·12%), 무죄(4건·7%), 벌금형 집행유예(2건·3%), 선고유예(1건·2%)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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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주거침입 선고 57건 분석
속옷 훔치거나 잠든 모습 지켜본 경우도
가해자 보호관찰 없는 집유·벌금형 45건
실형은 단 7건 그쳐.. 2차 피해 우려 커
#1. “술 한 잔 같이 하러 가자.”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A(28)씨는 2019년 9월 초순 자정 무렵 자신의 집 거실에서 들려온 B씨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B씨는 귀가하던 A씨 발견하고 16분이나 뒤쫓다 몰래 집 안으로 침입했다. B씨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특별히 성적 접촉을 위해 주거에 침입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2. 서울 마포구에 사는 C(30)씨는 지난해 4월 오전 6시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상한 기척을 느꼈다. C씨를 쫓아온 남자는 자신을 8개월간 스토킹한 D씨. D씨는 C씨가 탄 엘리베이터를 1층에서 지켜보며 내리는 층을 확인한 뒤 해당 층에 올라가 두리번거렸다. 며칠 뒤엔 비상구 계단에 숨어 C씨의 귀가를 기다렸다. D씨 역시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주거 평온이 침해된 정도가 객관적으로 매우 중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주거침입 범죄가 늘고 있다. 2015년 7741명에 불과하던 주거침입죄 검거인원은 2019년 1만2295명으로 4년 새 58.8% 증가했다. 특히 여성을 노린 주거침입이 잇따르고 있지만 법원이 여성 대상 주거침입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가벼운 형벌만을 내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주거침입죄의 형량을 높이고 벌금형을 선고할 땐 보호관찰을 명령할 수 없도록 한 현행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30일 세계일보가 여성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 주거침입 단독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서울중앙·동부·서부·남부·북부지법에서 선고가 난 57건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5건(44%)이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18건(32%)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실형(7건·12%), 무죄(4건·7%), 벌금형 집행유예(2건·3%), 선고유예(1건·2%)가 뒤를 이었다.

57건 중 주거침입의 목적을 명시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35건(61%)이 성적 목적으로 저질러졌다. 화장실이나 속옷을 훔쳐볼 목적으로 침입한 범죄가 19건에 달했다. 이 외에도 자고 있는 여성을 1시간 이상 지켜보는 등 성적 의도를 갖고 주거침입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되는 사건이 16건 더 있었다.
벌금형을 내린 판결문 25건 중 절반 가량인 11건에선 ‘반성’이 양형 사유로 참작됐다. 속옷을 볼 목적으로 비어 있는 집에 들어간 피고인에게 “더 중한 범행 목적은 아니고 반성하고 있다”며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주거침입 목적이 다양한 만큼 성적 목적을 갖고 침입한 범죄라면 피고인에 대한 보호관찰을 명령하는 등 재판부가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집행유예 등엔 보호관찰을 명할 수 있는데, 35건의 성적 목적 주거침입 범죄 중 8건만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졌다. 벌금형에 보호관찰을 내릴 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현행법상 주거침입죄가 3년 이하의 징역형에 그치는데, 5년 이하 혹은 7년 이하로 최장기를 높이면 죄질에 맞는 탄력적 구형과 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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