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국토보유세와 부의 소득세

김수헌 2021. 5. 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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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김수헌 ㅣ 경제팀장

부동산 대란과 소득주도성장 공회전 속에 문재인 정부 하산길이 위태위태하다. 이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씨는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한국 불평등의 주원인은 재산이 아니라 소득”이라며 평등을 위해 임금격차 해소를 첫손에 꼽았다. 하지만 집값 폭등의 거대한 쓰나미는 ‘자산 불평등은 부차적’이라는 안일한 진단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그가 청년세대에 촉구한 ‘분노와 행동’은 현 집권세력을 향한 부메랑이 됐다.

장 전 실장에 이어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수현씨는 2011년에 쓴 책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부동산 세금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바람직한 방향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정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한 바 있다. 10년이 흘렀지만 ‘부동산은 끝나지 않았고’, 참여정부에 이어 다시 부동산 정책을 책임졌던 그는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세금 해법을 찾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재보선 참패 뒤 민심 수습을 명분으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깎아주기에 나선 여당의 퇴행적 행태는 그 실패의 결과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9개월 남았다. 지금은 여야, 진보·보수 모두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상상과 대안을 가다듬고 논쟁해야 할 때다. 눈에 띄는 두가지 정책 대안을 짚어보려 한다. 첫째는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지난 3월 경기연구원이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의 구체적 설계와 경제적 영향, 입법안까지 담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자산 불평등의 핵심 원인인 토지 불로소득을 차단하기 위해선 보유세 강화가 필수다. 다만 종부세 논란에서 보듯 조세저항이 걸림돌이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는 종부세를 폐지하고 개인과 법인이 가진 모든 토지에 세금을 매겨 현행 종부세보다 훨씬 많은 세액을 확보한 뒤 이를 전 국민에게 똑같이 나누자는 내용이다. 대다수 가구는 낸 세금보다 더 많은 기본소득을 돌려받도록 했다. 이들 ‘순수혜 가구’를 우군으로 만들어 증세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경기연구원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세율이 같은 비례세로 설계하면 순수혜 가구가 85.9%다. 세율을 1%로 잡으면 10억3천만원 이상 아파트(4인가족 기준)를 소유한 세대부터 세 부담이 발생한다. 누진세율로 과세할 경우 순수혜 가구가 95.7%까지 늘어난다.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보유세 인상을 통한 부동산시장 안정과 기본소득 실험을 위한 재원 확보라는 두가지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로 언급할 정책 대안은 보수 쪽 어젠다인 ‘부(負·마이너스)의 소득세’다. 변양호·김낙회·이석준·임종룡·최상목 등 전직 경제관료 5명이 지난달 함께 펴낸 책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서 사회안전망 정책으로 이를 주요하게 다뤘다. 부의 소득세는 복지와 조세 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기준소득 이상을 번 사람에겐 소득이 많을수록 누진 과세하고 저소득자에겐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은 현금(마이너스 세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어려운 사람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자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1200만원에서 연소득을 뺀 금액의 절반을 지급하도록 설계했다. 따라서 소득이 없는 실업자나 전업주부 등은 연 60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드는 재원은 97조1천억원으로 추산했는데, 이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현금복지를 대부분 없애거나 축소하고 소득세 기본공제 등도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와 부의 소득세 모두 현행 부동산 세제와 복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야 하는 만만찮은 과제다. 해외에서도 전면적으로 시행한 사례가 없고 부작용도 우려된다. 그렇다고 실현 불가능한 몽상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하반기 본격화할 대선 국면에서 치밀한 검토와 진지한 논쟁의 장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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