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우유, 버려야 할까요?
업계 "해외와 유통 구조 달라..소비자 피해 우려"
[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 텔러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보통 씨리얼로 아침을 해결하는 30대 직장인 최모씨는 요즘 냉장고 앞에서 고민을 종종 하곤 합니다. 어쩌다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 주에는 매번 냉장고 안 우유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리는 일이 잦아서 입니다. 2~3일정도 유통기한을 넘긴 우유를 바라보면 복잡해집니다.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가도 혹시나 탈이 날까 걱정됩니다. 결국 개수대에 남은 우유를 쏟아버리고 말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고민은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유통기한보다 긴 시간동안 식품을 소비하도록 안내하는 '소비기한'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관련 논의를 연내 완료할 계획입니다. 소비기한이 적용되면 개봉하지 않은 우유는 약 50일 가까이 섭취할 수 있게 됩니다. 업계에서는 당장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반발합니다. 소비기한 적용이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이런 논쟁은 왜 일어날까요. 먼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를 짚어보겠습니다.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식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통상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전체 기간의 60~70% 내에서 결정됩니다. 반면 소비기한은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유통기한에 비해 20~30%정도 깁니다. 소비기한을 적용할 경우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나도 최대 50일 가량은 문제 없이 섭취할 수 있습니다.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은 주로 환경단체들이 주장해 왔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매년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600만톤에 달합니다. 매년 평균 2.3%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부터의 증가율은 더욱 높을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이에 환경단체와 정부 등은 소비기한을 도입해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외식업계와 소비자도 소비기한 도입에 긍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식업계 입장에서는 소비기한이 명확히 정해진다면 버려지는 식재료 양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려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좀 더 여유있게 냉장고 속 우유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낙농·유업계는 왜 소비기한 도입에 난색을 표하는 걸까요. 유업계에 물었습니다. 국내 유제품 유통 체계가 소비기한을 도입한 국가들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현재 유제품에 소비기한을 도입하고 있는 국가는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캐나다 등입니다.
이들 국가는 국내 유통 환경에 비해 엄격한 냉장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유통 채널에서 우유는 외부의 열린 환경에 진열됩니다. 냉장 온도는 5~10도 선입니다. 소비기한 도입 국가는 외부와 단절된 냉장고에 우유를 보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냉장 온도도 0도에서 5도 사이로 국내 기준에 비해 다소 낮게 관리됩니다.
제품의 포장 방식 등에 따른 신선도 차이가 있어 소비기한을 일괄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매일유업에 따르면 개봉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냉장 상태에서 신선도가 더 오래 유지되는 제품은 '종이팩 우유'입니다. 원유 살균, 충전 포장 과정에서 2차 오염이 최소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봉 이후로는 '페트병 우유'가 더 오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 내 냄새 흡착 등의 문제를 차단할 수 있어서입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시판되는 냉장 우유는 살균 공정을 통해 유해한 병원성 미생물을 전부 사멸시키고, 일부 미생물을 불활성화시키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이 미생물이 활성화 될 수 있어 위험하다"며 "이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기간이 유제품의 유통기한이다. 특히 소비자의 보관 방법이 제각각이라 개봉 후에는 미생물 활성화 억제가 더욱 어려워져 안전성을 보증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멸균우유 제품에는 소비기간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도 나왔습니다. 멸균우유에는 미생물이 거의 없습니다. 6개월 이상 보관해 섭취하더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멸균우유에는 보존 기간에 따라 맛과 빛깔 등 '관능성'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지만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러한 관능성 변화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만 있다면 소비기한을 문제없이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요. 학계에서는 소비기한 도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직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 버려지는 주된 원인이 유통기한인 것도 사실입니다. 소비기한을 도입한다면 이러한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소비기한을 지금 당장 우유에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유제품은 일정 수준 미생물이 포함된 제품이 많아 유통과정상 변질될 위험성이 타 식품군에 비해 높습니다. 같은 이유로 상한 제품을 섭취했을 때 건강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큽니다. 때문에 소비기한 표시제를 시행하더라도 이론상의 소비기한보다 짧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고 소비기한만 표시할 경우 혼란이 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보다 유통 구조 개선과 소비자 인식 교육 등이 제도 도입에 먼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식약처의 판단 근거가 되는 우유의 소비기한에 대한 연구는 냉장 보관 온도 등의 환경이 통제된 상황에서 진행됐습니다. 실생활에서 유통 채널과 소비자가 우유를 보관하는 방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유제품 유통에 콜드체인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소비자가 유제품을 빠르게 냉장 보관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업계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소비기한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피해를 입더라도 책임은 제조사와 낙농업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억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 전 철저한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유통기한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일 뿐 실제 식품의 수명을 표기하려는 방법으로는 소비기한이 더 적절하다.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하면 소비기한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다만 유제품에 소비기한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유통 전 과정에서 낮은 온도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콜드체인 시스템이 정착되고 소비자의 인식도 바꿔야 유제품에 소비기한을 원활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냉장보관을 잘 하셨다면 유통기한이 지난 지 3~5일 가량 된 우유는 마음 편히 드셔도 됩니다. 불안하시다면 우유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려 보시면 됩니다. 우유 방울이 물에 가라앉는다면 신선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론상의 소비기한을 100% 신뢰하시는 것은 다소 위험합니다. 냉장고의 온도와 개봉 후 경과된 시간 등이 변수가 돼 위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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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tryo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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