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동학운동'하는 MZ세대 병사들 [그렇군]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2021. 5. 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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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7일 서욱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모습./국방부 제공


군 부실급식 사태의 파장이 계속 번지고 있다. 최근 부실급식 사태 시발점이 된 육군 51사단은 야당 의원들의 방문 당시 공개한 ‘삼겹살 수북’ 식단이 한 달에 한 번 장병들에게 제공되는 ‘특식’이었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6일 국민의힘 소속 국방위원들이 방문했을 당시 제공한 ‘해물된장찌개와 삼겹살, 상추쌈, 배추김치’ 등 점심 식단은 한 끼에 약 8000원 정도로, 한 끼 평균인 2390원의 약 2.7배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까지 가서 부대가 보여주는 식단만 ‘겉핥기 식’으로 챙겼을 뿐, 질의·응답 과정에서 얼마든지 현실을 체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위원들이 이를 게을리 한 게 아니냐는 양비론이 나온다.

최근 군 ‘부실 급식’ 고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육대전)는 시민단체를 만들 계획임을 밝혔다. 지난 23일 육대전에 따르면 운영자 김주원 씨는 게시글에서 시민단체를 만들겠다며 “비영리 민간임의단체 등록을 마쳤고, 자격 요건을 채우는 대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풍선 누르기’식 대책에 ‘우후죽순’ 폭로

요새 군 부실급식 사태를 계기로 병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동학운동’하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군 내부에서는 나온다. 군 간부들은 간부들대로 부대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MZ 세대 병사들의 SNS 목소리에 묻히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차원의 ‘휴가후 격리장병’들이 부실 급식에 제공에 대한 우후죽순식 폭로가 나오자, 육군 조리병들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리병 현황을 보면 육군이 7000여명이다. 육군 중대급 이하 부대를 기준으로 150명당 조리병은 2명이 배치된다. 해·공군이 150명당 4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절반 수준이다. 취사병 1명이 매일 75인분의 삼시세끼를 책임지는 셈이다. 민간인 영양사는 군단에 1명꼴이다. 군 급식체계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가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이 겹치면서 수면위로 급부상했다는 얘기다. 대책으로 전문업체 위탁을 통한 급식 외주화 등이 마구잡이식으로 나오고 있지만 모두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부실 배식으로 촉발된 병사들의 불만을 국방부가 ‘풍선 누르기’식으로 대체하면서 근무 여건이 다른 곳에서도 우후죽순 터져나오고 있다. 대학의 ‘코로나 학번’처럼 ‘코로나 군번’이 등장한 영향이 크다. ‘코로나 군번’은 코로나 19가 퍼지기 시작한 2020년부터 2021년 입대한 병사들을 말한다.

육군훈련소의 한 조교는 ‘조교가 훈련병들 눈치보기 바쁜 군대’라며 군 기강 해이를 지적했다. 그는 지난 16일 ‘육대전’에 올린 글에서 “훈련병들이 이제는 일과 시간에 조교가 생활관에 들어오든 말든 누워있다”며 “조교가 앞에 있어도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일삼는 훈련병이 태반이며, 상관들이 조교들 인권은 신경써주지 않으면서 훈련병들 눈치보기 바쁜 곳이 됐다”고 했다. 그는 “조교 4명이 훈련병 240명을 맡는 등 하루 17시간 넘는 격무에 시달린다”며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구체적인 실태와 고충을 토로했다. 조교 처우 개선 제보 직후 다음날인 지난 27일 육군훈련소장은 조교들을 대상으로 처우 개선 조교들 의견 수렴에 나섰다.

지휘관들은 지휘관들대로 대외에 대놓고는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상부가 간부들의 사기 저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대남 표심 의식한 ‘사과’와 ‘대책 발표’만 남발

병사 월급 인상과 휴대전화 사용 허용 등을 문재인 정부의 치적으로 여기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은 부실 급식 문제를 시작으로 장병 처우문제가 있따르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작용할 이들 ‘이대남’(이십대 남성)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장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방안 찾기 등 급한 불부터 끄기에 나섰다.

이번에 폭로된 일부 부대의 부실 급식은 지휘관이나 간부의 무관심, 배식 감독자 부재, 개인 기호 품목 취향 등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하고 있지만, 군 당국은 우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의식한 대책부터 남발하고 있다. 국방부와 각군은 ‘육대전’에 폭로 글이 올라올 때마다 사실 파악 후 대책을 내놓겠다는 댓글을 달고 있다. SNS를 통한 MZ세대 병사들의 거침없는 목소리에 당황한 청와대의 지시 때문이다. 육군 지휘관들도 앞다투어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대전’에 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육대전을 들여다보는게 일과가 돼 버렸다고 말하는 장교도 있다.

이와 함께 내년 급식비 19.5% 인상, 격리 중인 병사가 카톡 등으로 먹고 싶은 품목 등을 제시하면 대신 구매해주는 ‘PX 도우미’ 제도, 군 자체 ‘고발앱’ 개설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국방부는 처우개선 종합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일선 부대에서 폭로가 또 나오자 지난 7일에 이어 13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반복해 소집했다. 서욱 국방장관 주재로 두차례 열린 주요지휘관회의는 2시간이 넘는 동안 장관의 깨알같은 지시가 이어졌지만, 부실급식 폭로는 이어졌다. 급기야 국방부는 지난 18일 충남 계룡대 지역 21개 부대의 격리자 급양 실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군 수뇌의 지시가 일선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관련 간부들의 책임을 묻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게 군 내부의 중론이다. 기껏해야 관련 군 간부들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를 물을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직무유기가 되려면 연속성,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책임지는 사람 없이 군 수뇌부의 연속 사과로만 때울 수밖에 없는 게 군의 현실이 돼버렸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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