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조금 대란]② 美·中·유럽, 자국 산업 육성하려 화끈하게 지원

변지희 기자 2021. 5.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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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보조금 늘리고 지급 기한 확대
유럽 전기차, 보조금 확대에 시장 점유율↑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기차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한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은 전기차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지자체 보조금이 절반 이상 소진되면서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전기차 구매가 뚝 떨어지는 이른바 ‘보조금 절벽’이 올해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아울러 국내 기업이 전기차 분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수정돼야 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아이오닉 브랜드 제품 라인업 렌더링 이미지. 왼쪽부터 아이오닉6, 아이오닉7, 아이오닉5./현대자동차 제공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동화 전환’이 빨라지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친환경차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 수단 중 하나다. 아직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겐 전기차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 충전 인프라도 부족해 보조금 지원은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미국, 중국, 유럽(EU) 등 대부분의 국가는 보조금 지원 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론 차량 가격과 성능, 제조사별 판매량 등을 고려해 보조금 지급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내수 판매량이 20만대를 초과한 업체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다가 이를 60만대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은 보조금을 증액하는 것과 더불어 지급 기한을 2020년에서 2025년 말로 연장했다. 미국, 중국 등은 자국산 전기차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해 폐쇄적인 정책까지 펼치고 있다. 한국도 보조금 지급 과정에서 국내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미시간주 디어본의 포드 공장을 방문해 곧 출시될 신형 전기차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을 시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라며 "지금은 중국이 이 레이스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미국은) 그들이 레이스에서 이기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로이터=연합뉴스

◇ 美·中, 자국 車산업 보호에 적극 나서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자국 전기차 산업 육성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세우고 그 중 전기차 산업을 위해 1740억달러를 배정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할 때 미국산을 우선으로 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44만대의 공용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했다. 다만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여야 하며, 미국산 부품이 적어도 절반은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새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 실현되도록 도울 것”이라며 “(미국산 부품) 50%의 문턱은 높지 않다. 기업들은 더 많은 미국산 부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특정 자동차 제조사로 보조금이 편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뒀었다. 이에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 등 미국 현지에서 누적 전기차 판매량이 20만대를 초과한 업체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세액공제와 차량등록세 할인 등의 지원책을 토대로 전기차 보급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판매량 기준을 60만대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국 업체인 GM과 테슬라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세액공제 규모도 기존에는 500~3000달러 수준에서 최대 7000달러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 정부도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거나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해외 제조사에 비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 이에 현대차(005380)도 중국 현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9년 코나 일렉트릭(EV)을 출시하며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다. 최근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배터리 수주전에서도 중국 업체 CATL이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내년 출시될 ‘아이오닉 6’, 2023년 이후 출시될 기아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절반 이상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되는 셈이다.

국가별 인구 1000명당 전기차 보급 대수/그래픽=김란희

◇ 獨·日, 전기차 보조금 규모 확대

각국 정부는 보조금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전기차 보조금이 판매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유럽 시장에서 친환경차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133.5% 증가한 129만대를 기록했다. 전기차 보조금을 증액하고 전기차 인프라 구축 예산을 확대하는 등 유럽 각국에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2018년 6만유로 이하 차량에 대해 40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2019년부터는 4만유로 이하 차량과 4만~6만5000유로 차량으로 지급 대상을 세분화하고 각각 6000유로, 50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2020년부터는 보조금 액수를 더 높여 4만유로 이하 차량에 대해서는 9000유로, 4만~6만5000유로 차량에 대해서는 7500유로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이에 글로벌 시장에서 유럽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의 점유율은 2019년 27.2%에서 작년에 43.9%로 확대됐다. 중국의 점유율(41.1%)도 추월했다. 독일을 포함해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전기차 판매가 각각 전년 대비 278.7%, 177.8%, 251.3% 증가했다. 3개국에서는 지난해 보조금이 1000~4000유로 인상됐다.

일본은 주행가능 거리에 비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 순수 전기차 보조금은 주행거리 1㎞당 1000엔을 지급하는 것을 기준으로 정부에서 최대 40만엔, 지자체에서 최대 30만엔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정부 보조금을 최대 80만엔, 지자체 보조금 40만엔까지 상향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앨라배마에 있는 현대차 공장 모습./현대차 제공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국내 보조금 규모는 양적인 면에선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전기차 보조금 예산은 전년보다 23% 증가한 1조원 규모에 달한다. 승용·화물 전기차 보급 목표는 지난해 7만8000대에서 올해 10만대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환경부가 차량 한 대당 지급액은 줄이고 지급 대상 차량은 늘려가는 방안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승용 전기차 기준 최대 보조금은 지난해 820만원에서 올해 800만원으로 감액됐다. 지방자치단체별 보조금도 국비보조금에 비례해 차등 지급하기로 하면서 다소 줄었다.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고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선 한국도 다른 국가들처럼 자국 기업을 지원, 보호해주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보조금 지급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낮춰 저가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주면서, 한정된 보조금을 적재 적소에 배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 협회장은 “미국과 중국이 자국산 우선주의 정책을 펴는 게 지금은 특별한 경우로 보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보편화 된다면 한국도 한국산 전기차 및 배터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연기관차 관련 정책은 세계 각국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데이터가 있지만, 전기차 산업과 관련해선 모두가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자국 우선주의같은 폐쇄적인 정책을 앞장서서 진행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보조금 지급 규모는 총량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도 “인구 1000명당 전기차 보급률을 보면 중국보다 뒤쳐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 등 유럽에서는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낮은 가격의 차량에 더 많은 보조금을 주고 6만5000유로 이상의 전기차는 고급차로 판단해 보조금을 주지 않고 있다”며 “한국은 보조금 상한을 차량 가격 9000만원 이상으로 설정해 유럽보다 다소 높은 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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