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소멸'을 부른다던 신기술..실상은 '하류노동'의 무한증식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 (30)]

이광석 교수 2021. 5.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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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경제와 기술예속형 노동자들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현대판 ‘사회적 공장’ 플랫폼, 온라인 관제센터로
유령노동·크라우드워크·기그노동 등 허드렛일 양산
더 늦기 전에 대안적 기술 설계·법 재정비 나서야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빅테크와 플랫폼 업계는 전에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대기업들의 성장 지표 또한 회복세에 있다. 그에 비해 노동 현실은 그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아니 더 나빠지고 있다. 작년 한 해만 코로나19 충격으로 47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노동시장의 재앙이다. 자영업자 파산, 실직, 휴직 등과 함께 지능 로봇과 무인 자동화 매장 도입으로 돌연 일자리가 사라지는 ‘기술실업’까지 겹쳐 고용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내 주위에 프리랜서 작가, 강사, 예술가 등이 생활고로 인해 자신의 생업 혹은 부업으로 플랫폼 배달이나 물류창고 일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불과 2~3년 사이 이른바 ‘플랫폼노동’이 우리 일상이 됐다. 요새 정규직 일자리도 평균 10년을 버티기 힘들다고 하니 이도 안정적이라 보기 어려워졌다. 정년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몸뚱이를 고되게 굴려야만 근근이 먹고사는 임시 일감만 크게 늘고 있다.

그 누가 ‘노동의 종말’이라 했던가. 인공지능(AI) 자동화로,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비해 사라지는 일이 더 많아져, 결국 인간 노동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라는 권위 있는 국제 연구소들의 미래 노동 예측은 일부 맞기도 하지만 영 틀리기도 한다. 그들의 예측은 자본주의의 코로나19 충격과 ‘고용 없는’ 노동이 급증하는 현실을 주의 깊게 읽어내지 못했다. 신기술 자동화는 전통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도, 바야흐로 ‘질 나쁜’ 노동을 대거 양산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등 신기술을 보조하는 ‘위태로운’ 노동들이 폭증하는 현실은 노동 종말론을 마치 비웃는 듯하다.

■플랫폼 공장의 탄생

오늘날 신기술의 혁신과 흐름만 좇으면 사태의 본질을 잃기 쉽다. 삶의 풍요 이면에 가려진 노동 변화를 놓칠 수 있다. 과거 자동화 기술은 주로 노동이 수행되는 공장과 사무실 공간에 머물렀다. 이제 자동화는 공장 담벼락을 넘어 우리 사회의 기본 인프라가 돼간다. 자본주의의 최근 목표가 ‘공장의 자동화’에서 ‘자동화 사회’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 논리가 사회를 뒤덮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실체라 한다면, 자동화 기술의 사회적 확장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변수는 이를 가속화한다.

오늘날 자동화 기술의 사회적 확장은 ‘플랫폼’ 장치로 촉진된다. 플랫폼은 일종의 현대판 ‘사회적 공장’ 노릇을 한다. 자동차 공장처럼, 플랫폼 공장은 원료인 디지털 데이터, 일종의 주물 역할을 하는 데이터 알고리즘 명령어, 생산 공정의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돕는 인공지능을 핵심 기술 동력으로 삼는다.

각자의 휴대폰 속 모바일 앱들은 이들 플랫폼의 시민 데이터 수집과 처리를 돕는 맞춤형 창구가 된다. 플랫폼은 현실 경제와 사회의 거의 모든 유·무형 자원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중개한다. 플랫폼은 바이러스와의 접촉 없는 쾌적한 온라인 소비를 돕고, 우리의 기술감각과 문화소비 양상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플랫폼이 점점 자원, 데이터와 서비스의 경제·사회적 순환을 통제하고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변조하는 일종의 온라인 관제센터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플랫폼은 노동을 증식하고 중개하는 인력시장의 온라인 허브 구실을 한다. 플랫폼은 자원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간의 ‘산노동’을 흡수하는 인력시장의 강력한 자기장을 구동한다. 플랫폼노동 현실이 ‘노동 종말’의 미래 테제를 반박하는 극적 무대가 된다. 플랫폼이 불경기와 코로나19 실업을 먹잇감 삼아 실직자들을 대거 빨아들이며 쾌속 성장하기에 그러하다.

■플랫폼 기술예속형 노동자들

자동화 현실은 개발자 등 전문화된 IT 정규직 임노동 숫자를 늘리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흔한 자유 직종의 쾌적한 근무환경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상상 이상의 ‘위태로운’ 플랫폼노동을 더 넓고 깊게 양산한다. 플랫폼의 기계 장치인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술을 원활하게 작동하고 자원·서비스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려면, 곳곳에 인간의 산노동이 필요한 까닭이다.

가령 우리 주위에 흔한 플랫폼 배달노동은 물론이고, 유령노동, 크라우드워크, 기그노동, 데이터노동 등 새로운 신기술 예속형 노동 유형들이 플랫폼 장치에 매달린 채 증식한다. 이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정해진 시공간 틀에 갇힌 노동이라기보단, 우리 곁 일상의 사회 속 노동 유형에 더 가깝다.

플랫폼 기술예속 노동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플랫폼의 인공지능 알고리즘 자동화 장치를 만들려면, 전문 개발자도 필요하나 단순 반복노동이 폭넓게 투입되어야 한다. 우린 이를 ‘유령노동자’라 부르곤 한다. 이들은 플랫폼 인공지능의 기계학습이나 특정 의뢰인의 디지털 공정을 돕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허드렛일을 수행한다. 유령노동자는 인공지능 뒤에서 마치 투명인간처럼, 인공지능 인형에 ‘눈알 붙이기’식의 단순 비숙련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크라우드워커’도 이와 흡사하다. 이는 인공지능 유령노동자와 함께 주로 단기 계약 프리랜서 창작노동자를 합쳐 쓰는 명명법이다. 플랫폼은 다양한 프리랜서들과 일감 의뢰인들을 중개하며 거대 인력(크라우드) 시장을 만들어낸다. 아마존의 ‘미케니컬 터크’(엠터크)는 이와 관련한 구직 플랫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엠터크가 일손이 필요한 의뢰인이 원하는 다양한 업무를 플랫폼에 등록하면 이에 구직자는 분 단위로 쪼개진 건당 단기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구조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음식배달원(배달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노동자, 택배·배송 노동자는 어떠한가? 호출형 ‘기그노동자’ 혹은 일반적으로 ‘플랫폼노동자’라 알려진 이들 노동군은 플랫폼의 물리적 자원 흐름을 위한 마치 실핏줄 같은 역할을 떠안은 지 오래다.

‘언택트(비대면)’ 경제는 자동화된 소비에 비례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인간 노동을 동원해야 가능한 플랫폼 체제에 의지하고 있다. 플랫폼은 코로나19 생활고와 실직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플랫폼노동 종사자로 대거 흡수하며 노동문화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은 데이터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노동자의 동선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자마자, 불과 몇 년 사이 ‘새벽배송’과 ‘총알배송’이란 반노동의 배달문화까지 정착시켰다. 산업 기계 장치에 끼고 깔리어 매일같이 죽임을 당하는 산업노동자처럼, 오늘날 플랫폼노동자들의 과로사와 사고사 또한 크게 늘고 있다.

■비공식·무상의 일 흡수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감들조차 위태롭고 질 나쁜 단기 시급으로 만들어 흡수하기도 한다. 가령 ‘그림자노동’은 공식 임금노동 체제로부터 소외된 무급의 가사·재생산 노동을 지칭해왔다. 이는 주로 ‘집안 여성’ 혹은 ‘주부’의 일이자 ‘일하는 남성’을 위해 조력하는 무상(무보수)의 일로 취급됐다. 플랫폼은 그림자노동을 인력시장의 공식 경제 영역으로 편입한다. 청소, 돌봄, 가사 도우미, 감정노동 등 비가시·비공식 일이 일개 용역업체 일에서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 노동시장으로 통합되고, 더 잘게 쪼개진 시간으로 거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플랫폼은 전통의 노사 고용관계를 해체한다. 그 안에서 기업주와의 노동계약은 독립 사업자의 서비스 규정으로 대체된다. 이로 인해 플랫폼은 노동자 보호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다보니 산업재해 등 기업 비용을 개별 노동자에게 외주화하는 경우가 흔하다. 플랫폼 인력시장에서 누군가의 일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언제든 쉽게 대체 가능하다. 늘 유사 과업을 하려는 노동자들은 넘쳐나기 마련이다.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 환경은 물질의 보조 없이도 우리 인간이 삶을 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데이터 흐름이 주로 온라인에서 이뤄지지만, 그것이 오프라인의 물질 조건 없이는 작동이 불가한데도 말이다. 이제까지 봤던 유령과 기그 노동, 그림자노동 등 각종 플랫폼노동은 디지털 가상경제 이면의 살아 있는 현장의 물질 조건들인 셈이다.

플랫폼의 제대로 된 본모습을 읽기 위해서는, 줄곧 외면되어온 ‘하류노동’(언더기그·undergig)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류노동은 디지털 자동화를 물리적으로 떠받치는 IT업계의 제조노동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남반구 아동·여성 착취 노동, 반도체 부품 노동, 휴대폰 조립 노동, 성·폭력 영상 필터링 등 콘텐츠 조정 노동, 디지털 가상통화 채굴 노동, IT 지원 노동, 코발트 광물 채취 노동, IT실험실 청소 노동 등이 가상 플랫폼을 떠받치는 하류노동에 속한다.

하류노동은 유령·기그 노동보다도 저가치, 저평가되어 있다. 이는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초창기에 노동자들의 심신을 피폐화하던 ‘독성’화된 노동과 꼭 닮아 있다. 하류노동의 실체는,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청정의 장밋빛 미래인 양 포장되는 디지털 혁신의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플랫폼 신기술이 남기는 독성은 인간 생태의 골칫거리이자 앞으로 더욱 노동하는 몸과 정신에 스며들어 각종 신체 질병, 트라우마와 우울증의 상흔을 남길 것이다.

■플랫폼노동의 미래

‘플랫폼 공장’에는 생계를 위해 이렇듯 알게 모르게 몸을 움직여 생존을 도모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끝도 없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플랫폼은 직접 고용 없이도 우리 주변의 살아 있는 거의 모든 인간 노동력을 끌어모은다. 이를 통해 신기술은 노동의 소멸이 아닌 질 나쁜 노동의 무한 증식을 도모한다.

이제 플랫폼은 소위 ‘경제활동인구’에 제한 없이 그들의 노동력을 사회 그 자체로부터 공급받아 운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디지털 문화에 밀착된 우리의 현대 삶을 보라. 동시대 플랫폼을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스마트폰을 쥔 우리의 수많은 데이터 활동을 포획하는 능력에 있지 않았던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매 순간 우리의 데이터 활동은 거의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이뤄지는 것이 관례다. 간혹 SNS 인플루언서나 유튜버 셀럽 등 직업적 크리에이터들이 수익을 올리는 예외 현실이 있지만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플랫폼에 ‘데이터 무급노동’을 24시간 제공하는 처지에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좋아서 하는 노동이자 활동에 가깝다. 우리가 그렇게 생성한 데이터와 영상 콘텐츠 활동의 결과물은 일단 플랫폼들을 거치면 거의 대부분 무상·무급의 노동으로 그들에게 포획된다. 플랫폼은 그렇게 우리 사회의 활동을 노동으로 흡수하는 블랙홀처럼 변한다.

코로나19 충격 속에 빅테크 플랫폼들의 성장은 갈수록 인간 노동 상황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플랫폼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노동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할 공산이 크다. 더 늦기 전에 플랫폼 시장의 폭주 제어뿐만 아니라 노동사회의 폐해에 맞서 대안적 기술 설계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당장은 자동화 열풍에서 쉽게 가시권에 잡히지 않는, 위태로운 플랫폼노동 문제를 사회 의제로 공론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노동의 사회적 성격 변화에 맞춰 근로기준법이 재정비되고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개별화된 노동 방식으로 인해 서로 존재를 확인하기조차 어렵지만, 위태로운 노동 조건에 맞설 수 있는 노동 주체의 저항과 사회 연대의 방식을 꾀하는 일이 그 시작점에 있어야 한다.

▶이광석 교수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인류세, 포스트휴먼, 플랫폼과 커먼즈, 비판적 제작문화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디지털의 배신>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다.

이광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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