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은 어떻게 범죄의 미끼로 활용됐나

강재구 2021. 5. 2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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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광풍]암호화폐 매개 범죄 1~5월 판결문 분석해보니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3월 ㄱ씨는 “암호화폐가 곧 거래소에 상장되는데, 상장되면 5~10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를 권유해 3천만원을 챙겼다. 지난 1월 법원은 ㄱ씨가 코인을 매수해 수익을 내줄 의사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기 혐의 등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ㄱ씨 사례처럼 이런 관심을 이용한 범죄 또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7일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를 열쇳말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선고된 1심·2심 판결문 46건을 살펴보니, 암호화폐는 고수익을 내주겠다고 속여 투자금을 받아내는 사기범죄나 다단계 판매의 매개물로 자주 활용됐다.

가장 많은 범죄 유형은 암호화폐에 투자해 수익을 내주겠다고 속이는 경우(21건)다. 암호화폐의 등락 폭이 큰 점을 강조한 데에 더해 ‘미공개 정보 활용’이라는 가짜 미끼를 쓰는 방식이 주로 활용됐다. 실제로 돈만 챙기고 투자를 안한 경우가 많았다. 이외에도 암호화폐 채굴기 구매나 암호화폐 결제대행사 등을 운영한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사기 피해 금액은 300만원에서 4억원으로 다양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암호화폐를 이용해 다단계 투자 사기나 유사수신행위를 하는 경우(5건)도 있었다. 이 경우 피해 금액은 더 컸다. 서울 소재 무등록 다단계판매업체의 지역별 센터장과 회원 8명은 2017~2019년 사이 ‘업체에 투자 하면 그 대가로 회사에서 만든 암호화폐를 지급해주겠다’며 투자자와 하위 사업자를 모았다. 2년 동안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가로챈 투자금액은 64억원가량이었다. 그러나 투자자에게 지급된 암호화폐는 시중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코인이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올해 2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이들에게 징역형이나 벌금형 등을 선고했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다단계 투자 사업을 하던 ㄴ업체는 ‘마시면 피부 독소가 제거되며 체중 감량이 되는 물’을 판매한다며 자신들이 만든 ‘○○코인’으로만 살 수 있다고 홍보했다. ‘○○코인’ 투자자를 모아오면 매출액의 9~13%를 수당으로 지급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다소 황당한 사업이지만 ㄷ씨는 15명의 투자자를 모아 2억4500만원을 챙겼다. 결국 ㄷ씨는 지난 2월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대전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도 자금 추적 등을 막기 위해 암호화폐가 쓰이기도 했다. 범죄인 줄 모르고 암호화폐 송금을 도왔다가 재판에 넘겨진 경우(5건)도 있었다. 2019년 10월 ㄹ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코인 펌핑(시세를 띄우는 행위) 작업할 사람을 모집한다. 본인 투자금은 필요없다’는 글을 보고 게시물 작성자에게 연락했다. 글쓴이는 ㄹ씨에게 ‘본인의 계좌로 돈을 받으면 암호화폐를 구매해 지정된 암호화폐 지갑으로 해당 코인을 송금하면 송금한 돈의 1~2%를 수당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코인 펌핑을 한다는 글과 달리 글쓴이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이었고,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을 세탁할 목적으로 ㄹ씨에게 송금업무를 시킨 것이다. ㄹ씨는 17회에 걸쳐 범죄 조직원에게 2100만원가량의 암호화폐를 송금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미필적으로나마 범죄행위를 인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해 지난 1월 ㄹ씨에게 사기방조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암호화폐의 계좌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마약이나 성 착취물의 거래수단으로 악용한 경우(10건)도 있었다. 이들은 다크웹(특수 웹브라우저를 사용해야 접근할 수 있는 웹) 등에서 마약이나 성 착취물 판매 정보를 얻은 뒤 판매자들이 제시한 암호화폐 지갑으로 비용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하는데, 경찰은 최근 이런 범죄가 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8일부터 ‘가상자산 불법행위 종합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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