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더 줄게 제발 떠나지마".. 외국인 근로자 붙잡는 中企 사장님들

남민우 기자 2021. 5.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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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코로나 인력난' 심각

전라북도 익산에서 22년째 플라스틱 포대 제조공장을 운영 중인 이상동(55) 왕궁산업 대표는 지난달부터 폐업을 고민 중이다. 공장 인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계약 만료가 임박했는데, 이들은 교대할 인력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다. 이 대표는 “인력난으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월 생산량이 평년의 20% 수준”이라며 “외국인 근로자 3명 중 2명이 귀국한 뒤 인력을 충원 못 해 정말 발악하듯 버티고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왕래가 끊기면서, 일부 산업의 인력 수급 문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중소기업계가 올해 1분기 중소기업중앙회에 요청한 외국인 인력은 1만1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의 입국 길이 막히며 정작 산업 현장에 배치된 인원은 4500명에 불과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E-9(비전문취업인력) 비자 소지자의 입국자는 351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 수준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국내 중소기업의 86.9%가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 지연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러스트= 김영석

◇고용주가 붙잡아 ‘불법체류’

중소기업들은 월급을 몇십만원씩 올려주는 것은 물론, 숙소 리모델링 같은 근로 여건 개선으로 어떻게든 외국인 근로자를 붙잡아 두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재무 상태가 좋은 기업들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못한 영세 기업들은 있던 인력도 뺏기는 상황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제지공장을 운영하는 김효섭(56)씨는 “(외국인 노동자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일부 외국인 노동자도 더 좋은 조건의 기업을 찾아 퇴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분야) 직종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이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들을 붙잡으려는 기업 간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일할 기간이 끝난 근로자를 억지로 붙잡고 있다. 충청북도의 한 금형 공장은 “올해 초 받으려던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이 막혀, (계약 기간이 끝난) 베트남 근로자를 더 붙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외국인 직원은 이미 2주 전에 본국으로 돌아갔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합법적 체류 기간이 끝났는데도 국내에 머무르는 불법 체류자는 지난 4월 말 기준 39만2311명까지 치솟았다. 전체 외국인 체류자의 약 20%에 달하는 수치다. 외국인 근로자의 1.5~2배에 달하는 월급을 주고서라도 한국인 인력을 구하려는 기업도 있지만 여의치 않다. 경기 서남권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 관계자는 “(근로 환경이 안 좋다며) 근무 2~3일 만에 전화기를 끄고 출근을 안 하는 직원이 부지기수”라며 “젊은 외국인 노동자 외엔 대체할 인력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부는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인력 사정을 감안해 오는 12월 31일까지 국내 체류와 취업 활동 기간이 만료되는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와 취업 활동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외국인 근로자 여건 개선 대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인 수급 자체가 막혀버린 상황이라, 인력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도입 예정 인원은 5만2000명이다. 중소기업계에선 “하지만 하루 신규 입국자 수가 수십 명에 불과해 도입 예정 인원을 채우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구인난 점점 더 심해질 듯

실물 경기 회복세가 완연한 미국에도 비슷한 이유로 인력난이 벌어지고 있다. 본국으로 떠났던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하면서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던 음식점과 유통업체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결국 이들도 급여 인상으로 인력 충당에 나섰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는 직영점 660곳에서 일하는 직원 3만6000여 명의 임금을 10% 올리고, 1만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발표했다. 신규 채용하는 직원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 12달러(약 1만3500원)에서 시간당 17달러(약 1만9000원)로 인상될 방침이다. 월마트는 또 일부 직원의 시간당 임금을 14달러(1만5700원)에서 15달러(1만7000원)로 올리기로 했고, 멕시칸 프랜차이즈 치폴레는 최근 2800개 매장 직원의 임금을 시간당 평균 15달러로 올리는 동시에 배달 주문 가격도 인상키로 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물류창고 직원 7만5000명을 새로 뽑기로 하면서, 신입사원의 급여를 코로나 사태 이전의 시간당 평균 15달러보다 13% 높은 시간당 평균 17달러로 책정했다. 인력난이 심한 일부 지역에선 1000달러(약 120만원)의 보너스를 얹어 주기로 했다. 브라이언 올사브키 아마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경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인력난 해소는 녹록지 않는 상황이다. 기업 간에 인력 쟁탈전이 심해지면서, 이른바 조건이 좋은 곳에만 구직자들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로 잃어버린 1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봉쇄 조치가 해제됐지만, 기업들은 잃어버렸던 기회를 되찾을 여유조차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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