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떨어진 '물곰'은 살았을까..영국 과학자들이 실험해봤다
2년 전 탐사선에 실려갔다 추락
추락 속도·충돌 재현 실험한 결과
\"충돌 압력에 바스라졌을 것\" 추정
2019년 4월 달에 착륙하려다 추락한 이스라엘의 무인 달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에는 물곰이라는 작은 생명체 수천마리가 실려 있었다.
길이 1mm가 채 안되는 작은 몸집에 다리가 8개인 이 동물은 습한 곳에서 사는 무척추 완보동물(느리게 움직이는 동물)로 지구상에서 생명력이 가장 질긴 동물로 통한다.
얼려도, 끓여도, 굶겨도, 그리고 치명적인 방사선을 쪼여도 죽지 않는 지구 최강의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동안의 연구들에 따르면 음식이나 물 없이도 최장 30년 동안 살 수 있고 최저 영하 272도, 최고 영상 150도의 극한 기온, 심해저의 6배에 이르는 압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정도의 미물이지만 수명도 60년 이상이나 된다. 2007년 9월에 실시한 유럽우주국의 한 실험에서는 지구 저궤도(고도 258 ~ 281km)의 방사선 환경에서 10일 동안 지낸 뒤 돌아온 물곰 중 일부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달에 보내질 당시 물곰은 수분이 제거돼 모든 대사 과정을 멈추고 깊은 동면 상태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상태로 10년을 보낸 물곰을 되살린 경험이 있다.
물곰이 달에 간 사실은 추락 넉달 뒤 이 사업을 추진한 미국의 한 재단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비밀리에 생명체를 가져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달 오염 문제와 함께 생명 윤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 관계자는 “탐사선은 추락했지만 물곰은 아마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곰의 강인한 생명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베레시트는 고도 7㎞ 지점에서 엔진 이상으로 추락했다.
실험 결과 추락 속도 초당 900미터가 한계치
달에 추락한 물곰은 그의 말대로 엄청난 추락 충격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까?
호기심이 발동한 영국 켄트대 과학자들이 궁금증을 풀기 위한 실험을 한 뒤, 그 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 ‘우주생물학(Astrobiology)’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우선 실험에 쓸 물곰 20마리를 확보했다. 그런 다음 실제 베레시트에 실렸던 물곰과 마찬가지로 물곰들한테 먹이(이끼와 물)를 준 다음 48시간 동안 얼려서 동면상태로 만들었다. 이 상태에서는 평소의 0.1% 수준 에너지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어 동면 상태의 물곰 2~4마리씩을 속이 빈 나일론 총알에 넣고, 실험용 가스총으로 초당 556m~1km 범위에서 6가지 다른 속도로 발사했다. 총알은 수미터 떨어진 모래더미에 박혔다.
실험 결과 물곰의 생존 한계는 초당 900미터(시속 3240km), 충돌 압력 1.14기가파스칼(GPa)를 넘지 못했다. 그 이상에선 물곰이 모두 바스라졌다. 초당 728미터(시속 2621km)에선 100%, 초당 825m(시속 2970km)에선 60%가 생존했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물곰이 추락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베레시트의 추락 당시 속도는 초당 수백m이지만 금속성 본체에 들어 있어 달 표면에 부딪히는 충돌 압력은 1.14GPa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봤다. 연구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물곰들은 살아남지 못했다고 확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보다 적은 속도와 충격을 경험한 물곰들은 살아남기는 했으나 동면상태에서 깨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최대 36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인 동면 물곰의 회복 시간(8~9시간)보다 4~5배 길다. 연구진은 “이는 물곰이 추락 과정에서 어느 정도 내상을 입었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살아남은 물곰이 번식까지 할 수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생명의 기원 ‘범종가설’ 성립할 수 있을까
이번 실험 결과는 물곰의 생존 여부와는 별도로, 지구 생명 기원 가설 중 하나인 범종가설(panspermia hypothesis)과 관련해서도 시사점을 준다.
범종가설이란 생명이 지구상의 무기물에서 스스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외계 운석 등을 통해 묻어 온 DNA를 가진 박테리아류의 유기체에서 발생되었다는 이론이다. 이번 연구는 범종가설의 성립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지구에 추락하는 소행성이나 운석의 속도는 초당 11km 이상이다. 이는 물곰의 생존 한계치를 훨씬 뛰어넘는 속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생존 한계치를 넘더라도 그 중 일부는 충격의 정도가 낮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또 만약 지구에 충돌한 소행성의 암석과 잔해들이 되튀어 달로 돌진할 경우엔 그 물체의 달 충돌 속도는 이보다 더 느릴 것이다. 연구진은 이 물질의 약 40%는 물곰의 생존할 수 있는 속도 범위 내에서 달에 도착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론적으로는 물곰이 지구에서 달로 이동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화성과 그 위성 포보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물곰보다 더 빠른 초당 5km 속도의 충돌에서도 살아남는 생물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종가설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물곰 충돌 실험으로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상상력이 한층 풍부해졌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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