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재원으로 고품질 저널리즘.. 미디어 바우처, 언론불신 해소할까

강아영 기자 2021. 5. 2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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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서도 28일쯤 관련법 발의 예정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저널리즘을 뒷받침하던 광고 수익 모델이 붕괴하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는 언론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선 디지털 유료 구독 모델을 새로운 재원 마련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까진 소수의 언론사에서만 성공의 신호가 보이는 상황. 이런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제도가 있으니 바로 ‘미디어 바우처’다.

미디어 바우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정 액수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국민들은 지급받은 바우처로 신뢰하는 언론사나 기사를 선택적으로 후원하는 제도다. 언론사간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며 상업성과 선정성이 심화되고 저널리즘 품질은 추락하는 상황에서, 공적 재원을 투입해 고품질 저널리즘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언론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나쁜’ 언론사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이 아니라 ‘좋은’ 언론사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이라는 점에서 일부에선 뿌리 깊은 언론 불신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해줄 수 있는 제도로 미디어 바우처를 평가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해외서 제시된 바우처…국내에선 조만간 법안 발의도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오래 전부터 미디어 바우처를 연구해왔다. 지난해 초 발간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 정책 리포트 ‘미디어 바우처: 코로나19 이후 저널리즘을 위한 새로운 지원 정책’에 따르면 미디어 바우처 제도는 2010년 미국의 미디어 정책학자 로버트 맥체스니가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2019년엔 시카고대 소속 조지 스티글러 경제 국가 연구소가 정책 보고서를 발간하며, 디지털 환경에서 저널리즘을 위한 지원 정책으로 미디어 바우처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성인 1인당 연간 50달러(한화 5만6000원)의 미디어 바우처를 발행하고,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에 5달러씩 10회로 나누어 기부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와 제안이 있었다. 18세 이상 모든 주권자에게 쿠폰을 지급하고, 후원하고 싶은 기사나 언론사에 쿠폰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2019년 경기도의 의뢰로 나온 적이 있다. 재원으로 경기도 홍보비 예산의 10% 정도인 10~20억원이 제시됐고 시범사업 후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언론재단에서도 최근 청소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연계해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시도해보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언론사·기사 호불호 집계... 이듬해 정부광고비 집행 기준으로

국회에서도 법안 발의 준비가 한창이다. 가칭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미디어 바우처법)’이 오는 28일쯤 발의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긍정적 의사표시인 미디어 바우처에 더해 부정적 의사표시인 ‘마이너스 바우처’까지 명시, 언론사나 기사에 대한 국민들의 호불호를 집계해 다음 해 정부광고비 집행 기준으로 삼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금성 이용권을 먼저 뿌리는 것이 아니라 선호도만 집계하고 그 결과만 통계내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예산 확보가 필요 없다.

이 법안을 준비 중인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제도 설계 초반엔 정부광고비를 (국민들께) 나눠드리는 쪽으로 얘기가 됐는데, 논의 과정에서 바우처를 투표권의 개념으로 바꿨다”며 “국민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바우처로 언론에 대한 선호도를 표시하면 그 현황을 집계하고 연말에 통계를 내 정부광고비 집행 기준으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정부광고비 집행 기준이 한국ABC협회의 신문 발행부수 등의 자료들인데 그 산정 기준을 바꾸자는 것이고, 이에 따라 정부광고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디어 바우처 제도의 태생 배경이 저널리즘에 대한 공적 자원을 확대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정부광고비 예산 기준을 바꾸는 것은 언론 생태계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파성 짙거나 영향력 큰 매체에 '바우처 편중' 등 부작용 우려도

재원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미디어 바우처 제도엔 사실 여러 한계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소수의 언론사에 후원금이 편중되거나 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언론사가 생산하는 기사와 독자가 원하는 뉴스 간 극심한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한편으론 독자의 정치적 성향과 판단에 언론사가 조응함으로써 정파성이 더욱 공고화될 수 있고 만약 바우처 제도와 관련, 정부 기관이 주도권을 가졌을 경우엔 언론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심화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강화나 바우처 상한제 역시 함께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미디어 바우처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며, 이미 그 의의와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적극적인 시범 사업과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17일 열린 ‘미디어 바우처 도입의 필요성’ 토론회에서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그 어떤 부작용도 유발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바우처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결국 제도 자체에 부과되는 조건이 늘어나고, 반대의 명분과 사유도 늘어나 결국 정책이 좌초될 위험이 커지게 된다”며 “수용자들의 ‘조회’가 아니라 ‘평가’가 언론의 수익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도의 의의와 효과는 충분하다. 가급적 신속하고 대규모로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계 많지만 수용자들 ‘평가’가 영향 끼치는 것만으로 효과는 충분

이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뉴스 품질을 평가하며 언론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언론사 역시 더 많은 바우처를 기부받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우처의 장점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시민들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언론재단이 26일 발행한 미디어 이슈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대한 국민 의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미디어 바우처 제도 실시에 찬성한 비율이 75.4%, 이 제도가 언론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72.2%에 달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선호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바우처로 언론 후원에 실제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전체의 77.7%)만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은 결과 73.7%가 ‘언론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며 “이번 설문조사는 언론의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미디어 바우처가 언론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우세함을 보여줬다. 다만 대다수 국민에게 미디어 바우처는 아직 생소한 개념으로,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과 함께 공론화 작업을 통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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