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별곡] 일본 만화 '귀멸의 칼날' 신드롬과 불편한 진실
최근 만화 '귀멸의 칼날'이 한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만화는 다이쇼 시대에 숯을 파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올곧은 '카마도 탄지로'라는 주인공이 식인귀 도깨비에게 가족을 몰살당하면서 시작된다. 청소년 만화라 하기에는 다소 섬찟하고 살벌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후 귀살대의 길에 들어서 유일한 혈육인 '카마도 네즈코'와 귀살대 동료들과 함께 펼쳐 나가는 고난의 여정이 만화의 주된 내용이다.
■ '귀멸의 칼날' 사회적 현상-경기 침체 '일본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
'귀멸의 칼날'은 2020년 5월 18일 최종화인 205화를 끝으로 단행본 23권으로 연재 4년 3개월만에 완결을 냈다. 단행본 23권 최종본은 2020년 12월 4일에 발매되었다. '귀멸의 칼날'은 만화책으로만 발매했을 때는 판매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림체나 내용의 전개를 높고 볼 때 그렇게 뛰어난 수작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다소 밋밋한 부분들이 많았다. 작가인 '고토게 코요하루(吾峠呼世晴)'가 직접 밝혔듯이 만화의 스토리 전개는 주요 캐릭터들의 설정을 미리 잡고 그에 따라 나중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손 가는 대로 그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작품 중간중간 말도 안 되거나 설정 오류 같이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 특성상 스토리 전개는 매우 빠르지만 치밀한 스토리 라인을 미리 만들어 두고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은 대부분 후반부에 가서 한 번에 풀리거나 또는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는 문제들이 있었고, 이런 문제들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귀멸의 칼날' 만화책은 시리즈 첫 발매인 1권만 해도 판매량이 1만 부도 넘지 못했을 만큼 저조한 실적을 냈다.
'귀멸의 칼날'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이후다. 만화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액션 연출이 애니메이션에서 그 빛을 발했던 것이다. 여기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편은 화려한 액션의 방점을 찍었다.
애니메이션이 '귀멸의 칼날'의 인기를 극대화시켰다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귀멸의 칼날'을 일본의 사회화 현상으로까지 만들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과 관련된 장소가 새로운 여행지로 각광받는가 하면 주인공들의 의복이나 소품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또한, 일본 전역에 있는 편의점과 도시락(외식)산업의 콜라보라던가 피규어 상품 및 완구, 기타 플랫폼 연계 사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현재 코로나로 인한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악화된 일본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일본 전통문화의 복원-"옷-집-집단문화...일본적인 너무 일본적인"
'귀멸의 칼날'에는 주인공에 따라 다양한 기술이 등장한다. 그 기술의 기본에는 '전집중호흡(全集中の呼吸)'이라 하는 것이 있다. 전집중호흡은 피의 순환과 심장의 고동을 일시적으로 빠르게 하여 체온을 올려 육체 능력을 극대화하고 강화하여 식인귀 도깨비와의 맞서 싸우기 위한 인간 귀살대들의 특수한 기술이다.
전집중호흡은 호흡법을 쓰는 개개인의 신체적 조건이나 기량과 기술의 특기에 따라 세부 기술로 물, 번개, 화염, 바위, 바람의 계파로 계파가 나뉘는데 여기에서 다시 뱀이나 소리, 안개, 꽃 등의 파생된 호흡법이 있다.
주인공 탄지로가 쓰는 호흡법은 물의 호흡을 쓰는데 그의 현란한 기술들을 보면 베기 '제1형 수면베기'나 '제2형 물방아', '제3형 유유(굽이)춤', '제4형 들이친파도' 등 그 외에 10형에 이르기까지 물의 형상을 기반으로 한 검술이다. 물의 호흡은 최종 11형까지 존재한다.
주인공 탄지로의 화려하고 미려한 물의 호흡 제O형의 연출을 보고 있다면 이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들기도 하다. 바로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유명한 화가였던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파도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일본 만화의 원류로 꼽히기도 하는 그의 작품들은 이미 200년이 지난 과거에서부터 일본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귀멸의 칼날' 작가인 '고토게 코요하루'' 역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영감을 받은 작품 외에도 '귀멸의 칼날'은 다른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특히 주인공들의 명 대사 중에는 특정 만화를 차용한 것들도 많아서 이런 부분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의 경우 정말 심각한 문제는 표절이나 영감의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은 일본 전통의 고유한 것들을 너무나도 멋지게 기가 막힌 연출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보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중에는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일본 전통 복식이라던가 주거생활이나 집단문화 등 일본의 바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전개되어 있다.
기존의 일본 유명 만화 중에 현재 '귀멸의 칼날' 정도의 규모와 영향력에 견줄 수 있는 작품으로는 '드래곤볼'이나 '나루토', '슬램덩크', '원피스', '도라에몽', '헌터X헌터' 등의 작품들이 있지만 이상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가장 일본적이고 일본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은 '귀멸의 칼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의 역대 발행 부수 순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1위인 '원피스'(4억 8000만부)나 2위인 '고르고', 3위인 '드래곤볼'과 '나루토', '명탐정 코난', '여기는 잘 나가는 파출소' 등의 만화는 일본에서도 굉장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들이고 모두 '귀멸의 칼날'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귀멸의 칼날'은 비교적 최근 짧은 기간 안에 역대 순위에 오르면서 1억 5000만부 이상의 판매를 달성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리며 기존의 역대 순위 기록을 갈아 엎고 있는 '귀멸의 칼날'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도 순위권 내의 다른 만화책들이 200권이 넘는 장편도 있고 아무리 낮아도 40~50권 정도는 기본이지만 '귀멸의 칼날'은 단 23권의 단행본만으로 기록을 세웠다는 점도 놀라운 점이다. 이것은 '귀멸의 칼날'이라는 콘텐츠가 그만큼 일본의 문화, 사회 전반적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확장해 나갔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일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 북미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그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불편한 진실
'귀멸의 칼'날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공신화를 기록해 나가는 사이 일본 전통의 것을 미학적으로 잘 그려낸 것이 '귀멸의 칼날' 인기 요인 중에 하나라면 이것이 그 주변국에 해당하는 한국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불거진 '귀멸의 칼날'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가 그렇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특이한 문양의 귀걸이를 보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귀걸이의 문양은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 욱일기를 연상시킨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욱일기 비판과 논란이 일었고 국내 상영의 경우 귀걸이 디자인을 다르게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 한정되어 수정한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욱일기의 의미를 잘 모르는 해외의 경우 주인공 캐릭터가 착용하는 상징적인 물건이라는 점에서 디자인 자체로도 인정받으며 관련 상품이 출시되기도 하고 해당 모양의 문신을 하는 팬들도 많다고 알려졌다.
욱일기는 일본에게 침략당했던 국가들에 한해서만 역사적 상처를 상기시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거나 사회적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해외 다른 국가들이나 최근 지난 과거사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욱일기 사용 논란이 지나친 국수주의로 비화되며 서로 간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또한, 작중 등장하는 일종의 무속 도구는 우리나라 백제의 '칠지도'를 연상하게 하는 모양의 검이다. 칠지도는 1874년 일본의 국학자 '스가 마사모토(菅政友)'가 '칠지도'의 녹을 제거하던 중 새겨진 62 글자를 발견하면서 글자 몇 자가 훼손되어 이를 두고 한국과 일본 학계간 견해가 다르다.
일본 학계는 백제 근초고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일본에 바쳤다고 하고 이와는 반대로 한국 학계는 백제 근초고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태자(미래의 근구수왕)를 일본에 외교사절로 보내 이 검을 하사했다 한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이 서로 견해가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칠지도라는 검을 제작한 것은 한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인 백제였고 이 검은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 설명이나 지식없이 '귀멸의 칼날'만 본 사람들은 저런 모양의 칼도 일본 고유의 것 중에 하나라고 여겨지게 될지 모른다. 문화의 힘은 전쟁의 총칼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한 나라의 정신을 수용하며 잠식한다는 점에서 큰 힘을 지녔다.
게다가 이전 세대와 달리 최근 미디어는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 이미 오래 되었다. 이전 세대에는 미디어 간에 확실한 경계가 있었지만 최근 미디어는 방송과 신문, 출판, 영화, 게임,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융합되어 있다. 최근 '귀멸의 칼날'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흥행으로 관련 제품과 피규어 상품까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한때 한국의 각종 미디어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라 하여 '노재팬(No-Japan)'을 부르짖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인데 지금의 한국 미디어 언론 어디에서도 이 불매운동이 왜 시작됐는지 언급하는 곳조차 없고 시민들도 왜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1997년 12월 24일, 강제 징용 피해자가 일본 오사카에서 일본의 강제 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으로 우여곡절 끝에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이 피해 보상 판결에 때문에 2019년 7월부터 일본은 대한민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이에 부당한 경제 보복을 규탄하기 위해 한국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서 시작한 것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시작이다.
미디어는 해당 국가의 역사적 산물임과 동시에 사회유지 기능체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과 사회 규범과 질서를 관장하는 의제설정의 기능도 갖고 있다.
하지만,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품절 대란이 일어나고 최근 한국에서 '귀멸의 칼날'이 흥행하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최신 게임의 발매를 기대하는 사람들까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선택적 불매운동이라는 오명과 비아냥에 원래의 가치마저 훼손되고 있다는 비난도 있어왔지만 미디어 중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반성의 성찰을 보인 곳은 거의 없었다.
정신적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가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인 것에 비해 '산업'은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활동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미디어와 관련된 문화산업의 특징은 문화를 일종의 거래 가능하며 지속 유지가능한 상품의 형태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제작된 문화상품은 정보통신과 IT 기술의 발달로 범위의 제한 없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힘을 지녔다. 즉, 현대의 문화산업이란 한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국민적 정서를 반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하겠다.
■ '귀멸의 칼날'의 흥행 배경...한국의 게임과 만화산업 성찰 기회되기를
'귀멸의 칼날'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연일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한국에서도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귀멸의 칼날' 극장판은 한국에서만 18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문화상품의 주로 성인 계층에는 소비되지 않았던 국내의 시장의 제약이 풀림과 동시에 코로나로 인한 극장가의 저조한 관람객 실적을 증가시킨 놀라운 사례라 할 수 있다.
2021년 기준 전세계 미디어믹스 시장에서 '드래곤볼'과 관련된 문화산업의 총 매출은 277억달러로 추산된다. '드래곤볼'과 관련된 문화상품들은 수익 규모로만 따지면 전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14위에 해당한다.
일본에 한정 지을 경우 일본 만화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의 만화가 문화산업이 되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국가 단위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귀멸의 칼날'은 아직 '드래곤볼'의 규모에 이르지 못했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언젠가 근접하거나 아예 따라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귀멸의 칼날'이 우리에게 준 재미와 감동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오래도록 규제와 제약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내의 게임과 만화와 같은 문화 산업이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이제는 우리의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게임과 만화 시장이 많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다행히 웹툰-웹소설로 새롭게 도약기를 맞고 있는 한국 만화산업 IP(지적재산권)전략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비대면과 모바일 시대, '승리호' 같은 웹소설-웹툰-드라마와 영화로 연결되는 미디어믹스 흥행 방식으로 '새 한류' 콘텐츠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돌아볼 점도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미디어는 사회유지 기능체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과 사회 규범과 질서를 관장하는 의제설정의 기능도 갖고 있다고 했다.
최근의 미디어는 이전과 달리 어느 한 집단이나 대규모의 자본과 기업, 국가와 지방기구 등에 예속되어 운영되기보다는 1인 매체나 소규모 방송국과 같은 다양한 채널의 미디어가 등장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즉, 우리 개개인이 미디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미디어의 의제 설정의 기능으로 '귀멸의 칼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스스로가 고찰해 볼 때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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