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지의 머리에서 꽃이 사라졌다" 쿠데타 후 첫 모습
[경향신문]
“그녀의 머리에서 꽃이 사라졌어요.”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75·사진)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민 민 소 변호사는 24일 재판 전 수지 고문을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 민 소 변호사는 “수지 고문은 정치활동을 할 때 항상 머리에 꽃을 꽂았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라진 꽃은 군부 쿠데타 이후 감금 중인 지금의 상황을 표현한 것일까.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지 고문이 이날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했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수지 고문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날이 처음으로 113일 만이다.
현지언론 미얀마나우는 이날 “수지 고문이 법정에 나와 (자신이 이끌었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국민을 위해 창당됐고 국민이 있는 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발언은 군부가 임명한 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21일 NLD를 강제 해산하고 지도부를 반역죄로 기소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NLD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80%를 얻으며 승리했다. 군부는 부정선거였다며 쿠데타를 일으켜 수지 고문 등 NLD 지도자들을 구금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또 공직자의 정년을 65세로 정한 규정을 삭제해 관보에 공시했다. 이는 오는 7월 65번째 생일을 맞는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의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절차로 해석된다.
수지 고문은 국가기밀누설, 무선송수신기 불법 수입 및 소지,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등 6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미얀마나우는 “국가기밀누설 혐의만 최장 14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고, 다른 5개 혐의로 받을 수 있는 형기를 모두 합하면 26년”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혐의만 유죄판결을 받아도 75세인 그의 정치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수지 고문의 변호사인 킨 마웅 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재판 전 수지 고문과 변호인단이 30분 동안 면담을 가졌다”며 “그는 건강해보였고, 모두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했다”고 말했다고 미얀마나우가 보도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수지 고문이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감금돼 있는지 알지 못하고, 먹고 자는 것 외에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돼 미얀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변호인단은 “수지 고문을 만나는 자리에 군부가 배석하진 않았지만, 폐쇄회로(CC) TV가 설치돼 있었다”고 전했다. 수지 고문의 변호인단은 면담권 보장을 요구했으나, 군부는 그동안 화상 접견만을 허용했다. AFP통신은 이날 법정 인근에 경찰 트럭들이 길목을 막는 등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고 전했다.
쿠데타 발생 이후 군부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엔 시민들과 민주진영이 연대해 출범한 국민통합정부(NUG)가 출범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중심이 된 시민군과 군경의 무력충돌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3일엔 동부 카야주에서 시민군이 경찰서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경찰 15명을 사살했다. 이날 카야주 데모소의 고속도로에서도 군부와 시민군 간의 교전이 벌어져 군경 13명이 사망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는 “쿠데타 이후 군부의 폭력진압과 고문 등으로 최소 815명 이상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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