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육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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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무엇보다 세종로, 광화문광장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전에 육조대로, 육조거리라는 본명을 찾아주는 게 도리였다.
최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새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흔적 등 유구가 무더기 발굴됐다.
광화문광장에 옛 육조거리를 복원·재현하고, 육조대로라는 옛 이름도 원상회복시켜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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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육조(이·호·예·병·형·공)가 있다고 해서 육조거리, 육조 앞, 해태 앞이라고 호칭하길 즐겼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육조는 물론 의정부, 삼군부, 한성부, 사헌부 등 주요 관청이 위계에 따라 좌우에 줄지어 있었다. 솟을대문과 담벼락의 행렬은 '육조장랑'이란 별칭을 붙여주었다.
육조대로엔 광장의 개념이 포함돼 있었다. 국가의례나 행사, 집회가 열린 국가의 중심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보기 힘든 폭 58m, 길이 200m의 장엄한 광장이었다. 식민통치기간 중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부를 지은 뒤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로 옮겨 버렸다.
또 육조장랑을 뜯고, 행정지명은 광화문통, 거리이름은 총독부 광장으로 억지 개칭했다. 광화문사거리 황토마루(황토현)를 뭉개고 신작로 태평로를 뚫었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이 총독부에 입주하면서 군정청 앞, 정부수립 후 중앙청 앞이라는 가명을 전전했다. 무엇보다 세종로, 광화문광장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전에 육조대로, 육조거리라는 본명을 찾아주는 게 도리였다.
광화문광장은 2009년 당시 오세훈 시장 때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박원순 전 시장이 2016년 재구조화에 도전했다가 완성을 보지 못했다. 최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새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흔적 등 유구가 무더기 발굴됐다. 조선 600년의 향기가 광화문광장 아스팔트 아래에서 숨쉬고 있었다. 2003년 청계고가를 철거하자 청계천이 우리를 맞은 것처럼 살아 있었다. 광화문광장에 옛 육조거리를 복원·재현하고, 육조대로라는 옛 이름도 원상회복시켜야 할 시간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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