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믿었던 자신이 순진".. 40대, 부동산 규제에 발등 찍혔다 [뉴스+]
文정부 들어 서울아파트 실거래가 70% 올라
7월 이후 DSR 강화로 대출 더 줄어
고소득자도 LTV 막혀 집 구입 요원
규제에도 집값 오르고, 규제로 빚 못 내
서울 거주 40대 가구 무주택비율 47%
6억 넘는 아파트에 DSR 40% 새 규제
주담대 외 추가대출 1억 넘기 힘들어
11억 집, 4억4000만원만 주담대 가능
'LTV 40%룰' 부모찬스 없인 집 못 사
고소득자도 강남구는 접근 불가 지역
“2017년쯤 이 동네 아파트 가격이 7억5000만원쯤 했는데, 살까 말까 망설였어요.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것이라 장담하고, 그때도 싸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집값이 내려가리라 믿고 전세를 선택했죠.” 그때 결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이불을 헤집는다. “2019년에 전세를 갱신하며 또 한 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 동네 아파트가 9억원쯤 했거든요. 이제 정말 고점이겠거니 했는데…”
현재 양천구의 아파트 평균가는 11억6500만원이다. 좀 더 싼 곳으로 집을 옮기면 되지 않을까.
“요즘 서울 어디든 싼 데가 있긴 한가요? 수도권조차도 비싸요. 직장과 아이 학교도 고려해야 하고, 맞벌이다 보니 부모님께 돌봄도 부탁해야 하잖아요. 전셋값만이라도 더 안 오르기를 바랄 뿐이죠.” A씨는 정부 정책을 믿었던 자신이 순진했다고 자책했다.
고소득자는 이번 DSR 규제 강화와 무관하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에 막혀 집을 사기가 어려웠고, 4분위 이하 가구는 DSR 규제에 더욱 대출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이 낮을 수록 DSR 규제의 영향을 많아 받았다.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40대 전세세입자의 애환 담긴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무주택이지만 집을 1채라도 사려는 지금까지 소외된 40대들을 생각하시고 정책을 만드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각종 대출 규제 등을 동원해 집값 잡기에 나섰지만, 집값만 오르고 무주택 실수요자는 규제로 집을 사기 더 어려운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3일 세계일보가 서울 등 5대 도시 거주 40대 소득자 가계의 분위별 소득·자산 현황과 서울의 부동산 시세,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국민 가계 소득을 5등분으로 나눴을 때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가구조차 ‘영끌’을 해야 서울의 9억원 이하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고, 4분위 이하 가구는 신용대출을 포함한 은행 빚만으로는 서울 전 지역의 아파트 구매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무주택 40대, 국가통계 평균보다 자산 적어
국가통계포털의 주택 통계를 종합해보면 2019년 기준 서울 40대 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무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난다. 무주택 비율이 90%가 넘는 30세 미만이나 68%인 30대보다는 낫지만, 상당기간 경제활동을 해 왔음에도 가족을 부양하거나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큰 숙제다. 현재 서울 60세 이상 세대주 가구의 60% 이상은 내집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금의 40대는 향후 60대가 되더라도 주택보유 비율이 상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 무주택 가구 40대의 현실 파악을 위해, 유사값으로 시중은행이 2020년 하반기 조사한 5대 도시 40대 무주택 소득자 348가구의 현황을 입수, 정부의 5분위 소득 경계값에 따라 분류했다.
◆고소득자 집 사고 싶어도, LTV 막혀 ‘한숨’
자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지만 은행의 문턱은 정부규제에 점점 높아지고 있다.
5분위 고소득 가구의 대출은 LTV 40% 규정에 막혀 있다. LTV 규제에 따라 5분위 가구는 서울 11억원의 아파트를 살 때(30년 원리금균등분할 상환, 2.5% 이자) 4억4000만원까지, 7억5000만원의 아파트를 살 때는 3억원까지만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정책 변화나 부동산 가격의 하락, 다른 재테크 없이 은행 대출만 이용해 4분위 이하 서울 무주택 40대 가구가 서울에서 자력으로 아파트를 사는 건 불가능하다.
7월 이후 소득 4분위 가구가 금천구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주담대로 최대 금액은 5분위와 마찬가지로 LTV 최대 한도인 2억6800만원이지만 DSR 한도가 동시에 적용되기 때문에 신용대출 최대액(연봉 150%까지 대출 가능, 이자 4% 기준)이 7200만원으로 줄어든다. 아파트를 사려면 순 자산을 빼고 1억61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 3분위와 2분위 가구도 줄어든 은행 대출과 자산 외에 각각 1억9500만원, 3억100만원이 더 있어야 금천구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1분위 가구는 새 규제를 적용하면, 주담대조차 줄어들기 때문에 매입 자금이 3억7200만원이나 부족했다.
아파트 평균가격이 8억9700만원으로 9억원에 육박하는 동대문구의 아파트를 사는 건 더 어렵다. 4분위와 3분위는 3억59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신용대출 최대한도는 새 DSR 룰에 걸려 각각 4900만원과 1400만원밖에 안 된다. 가진 자산을 탈탈 털어도 4분위는 3억1900만원, 3분위는 3억5300만원이 더 있어야 동대문구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2분위와 1분위는 말할 것도 없다. ‘부모 찬스’ 없이 자력으로 마련하기는 어려운 돈이다.
5분위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금천구 아파트는 주담대 외에 43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으면 살 수 있고, 동대문구 아파트도 신용대출 한도에 육박하는 1억7800만원을 빌리면 구매 가능하지만, 대출 여부는 불확실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을 옥죄는 상황이어서 고소득자라고 해도 1억원 이상의 신용대출을 받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설령 신용대출을 받아도 이자로만 연간 720만원의 부담이 늘어난다.
서울 아파트시장 움직임이 심상찮다. 2·4대책 이후 서서히 상승폭을 줄였던 아파트값은 4월 보궐선거 이후 다시 몸값을 높이더니 결국 15주 만에 대책 직전 상승률로 복귀했다.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매수심리가 살아난 게 화근이었다. 이렇게 되면 실수요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 전체 아파트값의 추이도 비슷하다. 지난달 서울 전체 자치구에서 실거래 신고된 아파트 3323건의 평균 매매가는 10억2300만원이었다. 이는 2017년 4월의 평균가 5억9000만원보다 73% 높은 가격이다.
정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동시 규제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모두의 주택 구매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당정도 이를 의식해 부동산 보유세 인하와 함께 이 두 요소를 선택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책의 초점은 주로 2030세대에 맞춰져 있다.
23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만 39세 미만의 청년 및 7년 내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40년 만기의 정책모기지 대출이 도입될 예정이다. 청년들의 내 집 마련에 따른 원리금 상환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청년의 경우 미래 소득을 선반영해 DSR를 올려주는 제도도 적용한다. 청년들을 위한 특별 대책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워낙 서울 집값이 급상승해 이런 대책에도 LTV 상향 없이는 주택 구매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부동산 대책 중에서 40대의 아파트 구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LTV와 DSR 비율을 얼마나 어디까지 조정·적용할지 여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선 공약으로 내세운 무주택자 LTV 90% 완화 방안은 당내 반대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이 도입되면 고소득자의 경우 지금보다 쉽게 아파트 구매가 가능해진다. 다만 LTV를 너무 높일 경우 시중에 돈이 더 풀리며 오히려 주택값이 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논의의 방향을 보면 LTV·DSR 확대 시 서울이나 수도권 핵심지역을 제외하거나, 소폭 인상, 특정 연령대에만 혜택을 주는 방향이 유력해 보인다. 이 경우 서울 거주 무주택 40대는 대책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40대를 포함한 전 연령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LTV와 DSR를 적절히 높이고, 서울까지 반영 범위도 확대하는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엄형준·나기천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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