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94살 한국전 영웅에 "미 참전용사 힘으로 한국 번영"

황준범 2021. 5. 2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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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미 예비역 대령 명예훈장 수여식 참석
바이든 "한미동맹 힘은 양국군 투지·희생서 탄생"
문 대통령 "피로 맺은 한미동맹, 평화·번영 핵심축"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한국전쟁 참전 영웅인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육군 대령(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한 뒤 퍼켓의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94살의 한국전쟁 참전 영웅에게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미 대통령의 명예훈장 수여식에 외국 정상이 동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공고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이날 행사는 <시엔엔>(CNN) 등 주요 방송과 백악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후 1시10분께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수여식을 열고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육군 대령의 목에 명예훈장을 걸어줬다. 수여식에는 문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상·하원 의원 등 수십명이 ‘노 마스크’로 참석했다.

퍼켓은 한국전쟁 때 레인저 중대 사령관(당시 중위)으로 평안북도 청천강 북쪽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전투에서 미8군 특수부대인 레인저 부대 지휘관으로 중공군에 맞서 몸을 사리지 않는 용맹을 발휘했다.

퍼켓은 이날 휠체어에 탄 채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군악 연주 속에 이스트룸에 입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한-미 동맹의 끈끈함을 강조하고 퍼켓의 무공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님, 오늘 이 행사에 참가하시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며 “미국과 한국 동맹의 힘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싸운 한국군과 미군의 용기, 투지, 희생에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의 소개를 받아 연단에 섰다. 문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서는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는 게 처음이라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큰 영광이자 기쁨”이라고 말했다. 이어 “퍼켓 예비역 대령님은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며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준 퍼켓 대령님과 같은 미군 참전용사들의 힘으로 한국은 폐허 위에서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영웅들의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은 한반도를 넘어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이 됐다”며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우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퍼켓의 공적에 대한 병사의 낭독이 끝난 뒤 바이든 대통령은 퍼켓의 목에 명예훈장을 걸어줬다. 낭독 중간에 고령의 퍼켓이 서있기 힘든 듯 약간 휘청이자 바이든 대통령과 한 병사가 양쪽에서 부축해주기도 했다. 퍼켓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할 때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도 앞으로 나올 것을 권해, 휠체어에 앉은 퍼켓의 양옆에 두 정상이 무릎을 접고 나란히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백악관이 공개한 퍼켓의 공적자료를 보면, 그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11월25~26일 205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이 박격포와 기관총, 소총을 쏟아붓는 가운데 탱크에 올라타 스스로 적군의 화력에 노출시키며 주의를 분산시키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그는 야간에 적들의 반격에 맞서다 수류탄 파편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대피를 거부하고 위험 속에 참호를 옮겨다니며 탄약을 배급하고 공격을 지휘했다. 자신이 있는 참호가 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상이 심해져 이동이 어려워지자 퍼켓은 부하들에게 자신을 남겨두고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부하들은 이를 거부한 채 고지 아래로 퍼켓을 이동시켰고, 퍼켓은 그곳에서 적군이 점령한 고지로 대대적인 대포 공격을 요청했다.

205고지 전투는 미8군 특수부대가 중공군에 패퇴한 전투로, 그간 우위를 점하고 있던 유엔군이 이 전투에서 패퇴한 것을 기점으로 한국전쟁이 보다 장기화 국면에 돌입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1926년생인 퍼켓은 1943년 이등병으로 군에 발을 들여, 194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48년 소위로 임관했다. 한국전쟁 때는 1950년 8월26일부터 11월26일까지 레인저 중대 일원으로 전투에 참여했고, 베트남전에서도 1967년 7월31일부터 1968년 7월3일까지 101공수부대에서 복무했다. 1971년 퇴역했다.

이날 수여식은 한국전쟁 때의 ‘혈맹’으로 시작된 굳건한 한-미 동맹을 부각하는 행사였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9일 기자들에게 사전 브리핑에서 “안보 분야에서 지난 70년간 동맹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철통같았고, 미국인과 한국인의 공통된 희생 위에 구축됐다”며 이번 수여식을 언급했다. 그는 “명예훈장 수여식에 외국 정상이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모두는 이 행사를 몹시 고대하고 있다”며 “아주 멋진 기회가 될 거라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공동취재단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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