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나는 팔레스타인의 슬픈 눈동자 [삶과 문화]

2021. 5. 2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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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부터 평탄치 않았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 늘 묘하게 설레는 일이지만 이스라엘 국경만큼은 피하고픈 골칫거리.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기록이 남으면 입국을 거절하는 나라가 많은 데다 열린 국경도 제한적이라 자칫하면 일정이 꼬이기 십상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다 택한 길은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들어가는 국경, 2014년 우리나라 단체관광객에게 폭탄테러가 일어났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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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가족을 잃은 팔레스타인들. AFP 연합뉴스

가는 길부터 평탄치 않았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 늘 묘하게 설레는 일이지만 이스라엘 국경만큼은 피하고픈 골칫거리.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기록이 남으면 입국을 거절하는 나라가 많은 데다 열린 국경도 제한적이라 자칫하면 일정이 꼬이기 십상이다.

미리 신경 쓸 것도 많았다. 그간 시리아나 레바논을 드나든 흔적이 무수하니 별도 심사는 따놓은 당상. 수상하게 볼 만한 취재수첩의 자잘한 메모도 없애고 들고 다니던 명함도 버려야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다 택한 길은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들어가는 국경, 2014년 우리나라 단체관광객에게 폭탄테러가 일어났던 길이다.

역시나, 별실로 데려가 심문을 한다. 왜 그리 오래 레바논에 있었는지, 시리아에 지인은 없는지부터 시작해, 2년간의 취재일정을 처음부터 짚었다가 거꾸로 되짚었다 하며 검증이다. 딴 나라에서는 스캔으로 대충 훑고 말던 배낭도 바닥부터 다 헤집어 살핀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니 어느새 국경도시의 저녁이 저물고 있었다.

일단 국경을 통과하고 나서 만나는 이스라엘은 생각보다 지나칠 정도로 평온했다. 옛 성벽에 둘러싸인 예루살렘 구시가는 오랜 발길에 반들반들해진 돌길이었다. 그 골목에 늦은 오후 햇살이 스며들 때는 어찌나 따뜻하고 평화롭던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다는 자취부터 유대인지구, 무슬림지구, 크리스천지구, 아르메니안지구로 4등분해서 살아가는 성안 모습도 그대로였다.

성벽 밖 신시가지는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세련되고 활기찼다. 근사한 식당부터 음악소리가 뿜어져 나오던 클럽까지, 어느 길에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방인의 눈엔 잘 보이질 않았다. 이슬람교도가 많이 모이는 성문 근처 가판에는 알록달록한 젤리가 한가득, 그 달콤한 군것질을 보며 꿀꺽 침을 삼키는 아저씨들을 보며 주변 아랍국가들과 똑같다며 키득 웃음도 나왔다. 유대교 촛대, 성모상, 아랍식 카펫을 한자리에서 파는 어느 가게를 보고는 이곳만의 아름다운 공존이구나 싶었다.

이 얄팍한 관찰이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미약한 평화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베들레헴이 있는 서안지구로 가는 길이었다. 지도 한 장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될 만큼 복잡한 경계와 정치관계가 얽혀 있는 곳. 유대인 정착촌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매일 그 유명한 ‘분리장벽’을 통과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작은 검문소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내내 잊히질 않는다. 체념한 듯한 눈동자 저 밑에서 자글자글 끓는 분노를 느꼈다면 단지 상상이었을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너무나도 자유로웠던 텔아비브, 한없이 온화했던 갈릴리호수 이야기를 도무지 할 수 없는 슬픈 나날이었다. 잔혹한 폭격이 쏟아지고 부모의 품에서 아이가 죽어가는데 여행의 추억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이 된 알아크사 사원 바로 아래에는 검은 옷을 입은 유대인들이 소원쪽지를 끼우며 기도하는 ‘통곡의 벽’이 있다. 그 벽 위로 반짝이는 바위사원에서는 무슬림들이 그곳에서 승천했다는 무함마드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같이’ ‘산다’ 이 두 단어를 동시에 쓰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양대 종교가 그리 오래 쌓아온 기도로도 힘든 일인가 보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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