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K-반도체 전략' 결국 기업 돈으로 생색내는 정부

박진우 기자 2021. 5. 2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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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510조원 규모의 ‘K(케이)-반도체 전략’이 공개됐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과감한 정책적 결정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일단 전략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또 이번 전략에 들어간 반도체 투자와 관련한 세액 공제와 반도체 관련 전문 인력 양성 등은 반도체 업계가 숙원처럼 여기던 것으로, 기업들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K-반도체 벨트라고 불리는 산업 지형도는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경기도 판교를 시작으로 서쪽 아래로 화성·기흥·평택(삼성전자)~천안·온양(반도체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큰 선이 그려진다. 이 선의 중간쯤에는 용인(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소부장 특화단지 등)이 있는데, 용인의 동쪽으로 이천(SK하이닉스), 또 동쪽 아래의 음성(DB하이텍)·청주(SK하이닉스)까지 획이 뻗어 ‘K’라는 문자를 완성한다. 우리나라가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거나 앞서가는 분야에 ‘K’라는 문자를 붙이는 건 이제 흔한 일이지만, 지도에서까지 ‘K’자를 새기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정부는 어쨌거나 이 K-반도체 벨트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최대 반도체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반도체 분야 경쟁력 확보에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건 두 손을 벌려 반길만한 일이다. 특히 현대 산업의 ‘편자의 못’으로 불리는 반도체 패권 다툼이 국가 주도로 흐르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국방에도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를 세계 강대국들은 외교와 안보로 접근하는 중이다. 미국이 안보를 문제 삼아 초법적인 태도로 중국 반도체 기업 등을 제재하는 건 ‘기술 굴기’를 외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문제는 나라에 중요한 변곡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정부는 기업에 숟가락 얹기를 해왔고, 이번 역시 그런 기시감이 든다는 점이다. 게다가 K-반도체 전략에 투입되는 510조원은 한국의 1년 예산에 버금갈 정도로 큰 규모인데, 정부 비중은 1%도 안 된다.

더욱이 ‘빅2’라 불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정부 의존은 절대적이다. 이들은 K-반도체 전략의 99.5% 이상을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전략과 별개로 이미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는데, 정부와 손발을 맞추기 위해 38조원을 더 써 171조원의 투자를 단행한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매년 20조원 이상을 메모리반도체에 투자할 계획이어서 10년간 200조원을 추가로 들인다. 두 분야를 합치면 K-반도체 전략 투자액 전체 510조원 중 370조원 가량이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 공장에 2030년까지 110조원을 투입한다. 또 이와 별개로 2025년부터 10년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원을 쓴다. 종합하면 230조원의 투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용인 투자금을 2030년까지로 한정해도 SK하이닉스가 K-반도체 전략에 차지하는 액수는 150조원 이상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의 2%도 되지 않는 시스템반도체에도 투자할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전체 투자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정부 지원 방안은 단순 계산으로 1조~1조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여기에는 직접 투자 형태가 아닌 세제 혜택까지 포함돼 있다. 정부 지원을 반도체 업계가 ‘파격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드러내고 불만을 얘기하지는 않지만,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는 목소리도 거의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우리 돈으로 약 56조원이 필요하다며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앞서 11조원의 인센티브 지원안이 미국 의회의 초당적인 지지 속에 특별법까지 마련된 상태다. 유럽연합(EU)은 68조원을 반도체 산업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모두 세제지원은 제외한 금액이다. 중국 역시 반도체 기업에 법인세 혜택을 주기로 한 한편, 아예 국영 반도체 기업들을 170조원을 투자해 키우기로 했다.

사실 국가 전략과 정책이 누군가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쥐여주는가에 달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500조원이나 쓰겠다고 하는 이런 기업들이 없었다면 K-반도체 전략은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부는 2030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반도체 대국이 되기 위한 통 큰 지원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공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또 말로만 지원일 뿐, 숟가락 얹기에 그치지는 않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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