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文의 시간'이 끝나간다

김기동 2021. 5. 19. 22: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죽비 맞아 정신 들었다"는 대통령
"끝까지 앞만 보고 가야" 마이웨이
남 말 안 듣는 건 소신 아닌 아집
광장에 갇힌 진영논리 걷어내야

죽비(竹篦). 40∼50㎝ 길이 대나무 3분의 2가량의 가운데를 타서 두쪽으로 갈라지도록 하고 나머지는 자루로 만든다. 사찰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사랑의 회초리’다. 수행 중 졸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 야단을 치거나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징벌’의 의미보다는 ‘애정’이 담겨 있다. ‘절개’ ‘지조’가 꽃말인 대나무를 재료로 쓴 게 의미심장하다. 검찰의 CI(상징 이미지)에도 다섯 개의 대나무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가운데 칼을 형상화한 대나무는 ‘정의’를, 좌우 4개는 공정과 진실, 인권, 청렴을 상징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이젠 달라지려나. 기대감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정부의 피할 수 없는 책무”라고 했다. 정책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 대다수가 체감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투기 근절, 실수요자 보호, 시장 안정이라는 대의명분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틀렸다면 고치는 게 순리다. 대나무 꽃말처럼 지조를 지키겠다는 건지, 반성은 ‘말’뿐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비웃듯 집값·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영끌’에 몸부림쳐도 내집 마련 사다리는 무너졌다. 주택 보유자에겐 세금폭탄이 쏟아졌다. 임대차 3법 등 악법 탓에 전세난민이 급증하면서 주거 안정성이 흔들리고, 매물 잠김으로 주거이전의 자유까지 빼앗길 지경이다. 다양한 민간 주체들의 시장기능은 외면한 채 공공중심의 주택정책만 고집하는 게 답답하다.

인사스타일 역시 달라진 건 없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지만, 야당이 반대하는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한두 명 더 보탠다고 크게 달라지겠냐’는 식이다. 청와대는 부족한 검증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야당이 반대한다고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 요직을 맡길 인재를 고르면서 도덕성은 도외시하는 무책임이 개탄스럽다.

국민의 눈높이에 모자라는 도덕성을 학문적 성취와 능력으로 덮을 순 없다. 그런 인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펼칠 리도 없다. “능력 검증은 뒷전이고 흠결만 트집잡는다”며 야당·언론 탓을 하는 대통령. 외신마저 4·7재보선 패인으로 문재인정부의 ‘내로남불’을 꼽았다.

경제도 뇌관투성이다. ‘비정규직 제로’를 외친 4년간 비정규직이 94만명 늘었다. 지난달 취업자가 6년8개월 만에 최대라고 자평했지만 실상은 60세 이상 고령자와 ‘관제 알바’로 메워졌다. 급기야 한동안 꺼리던 ‘소주성’(소득주도성장)도 재등장했다. 자영업자의 몰락을 불러온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이 근간인 소주성은 ‘소주빈’(소득주도빈곤)이라는 실패로 이어진 지 오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이탈리아를 제쳤다는데 서민생활은 더 팍팍해졌다. 올해 4%대 성장을 바라본다는 자찬까지 늘어놓는다. 여차하면 포퓰리즘에 거덜날 판인 재정으로 성장률 사수에 나설 태세다. ‘특등 머저리’라는 원색적 비난 속에 남북관계는 파탄나고,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해 변변한 군사훈련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 사람이 걸어도 한 사람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다. 초심을 잃어서도 안 되겠지만, 성과에 집착해 자신만이 옳다고 하고 남의 견해를 듣지 않는 건 소신이 아닌 아집이다.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친분 있는 사람에게 난(蘭) 한 촉 선물을 받았다. 어느 날 길을 떠나게 됐다. ‘꽃이라도 피울까’ 내딛는 걸음마다 걱정이다. 결국 길떠남을 포기하고 난을 돌려준다.” 문재인정부의 ‘마이웨이’는 어리석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광장에 갇힌 진영논리를 떨쳐내야 한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위험하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써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