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우아한' 복수

하경헌 기자 2021. 5. 1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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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류현진 ‘통산 3패’ 보스턴에 7이닝 7삼진 무실점 최고투 ‘100구 쇼’
완벽한 제구·행운 따른 수비·타선 지원에 힘입어 8 대 0 ‘시즌 4승’
‘평균자책 2.51’ 대체불가 에이스 위용 과시…토론토 “진짜 엘리트”

중국의 격언 중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게 있다. 그만큼 앙갚음에 앞서서는 차분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뜻인데, 류현진(34·토론토 블루제이스)은 이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류현진이 올시즌 최고의 피칭으로 보스턴 상대 첫승을 따냈다.

류현진은 19일 미국 플로리다주 더니든 TD 볼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메이저리그(MLB) 홈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7이닝을 4안타 무사사구 7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팀은 보스턴에 8-0으로 크게 이겼고, 류현진은 개인 3연승을 포함해 시즌 4승째(2패)를 따냈다.

흠 잡을 데 없는 투구였다. 7이닝은 올시즌 개인 최다 이닝 타이이며, 7개의 삼진 역시 최다였다. 그리고 사사구가 없었다. 투구 수 100개도 올시즌 개인 최다였는데 스트라이크가 67개, 볼이 33개로 이상적인 비율이었다.

류현진이 올시즌 7이닝 투구를 두 번 했다. 시즌 두 번째 등판이던 지난달 8일 텍사스전과 지난 13일 애틀랜타전으로, 두 경기에서 각각 2실점과 1실점을 해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지만 실점은 있었다. 토론토에서는 류현진 외에 올시즌 7이닝을 던진 투수가 없다. 시즌 세 번째로 7이닝 투구를 한 류현진은 최근 2경기 연속 7이닝을 던지며 팀내 대체불가 에이스의 위용을 과시했다. 시즌 평균자책도 2.95에서 2.51로 떨어뜨렸다.

이날 류현진은 포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우타자 몸 쪽으로 예리하게 휘는 커터와 바깥쪽으로 가라앉는 체인지업을 절묘하게 조화했다. 체인지업은 26개, 커터는 21개 던졌다.

그리고 슬라이더와 커브, 좌타자의 몸 쪽으로 역회전하며 휘는 싱커성 투심도 던졌다. 7회초 2사 후 헌터 렌프로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마지막 아웃카운트의 결정구 역시 이 투심이었다. 보더라인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류현진의 제구에 보스턴 타자들은 연이어 얼어붙었다.

행운도 따랐다. 류현진은 1회초 첫 타자 키케 에르난데스와의 승부에서 초구에 홈런성 타구를 맞았다. 이는 우측 펜스를 넘길 뻔했지만 바람이 오른쪽으로 강하게 분 덕에 파울홈런이 됐다. 파울을 확인한 류현진이 크게 웃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첫 투구부터 홈런을 맞았으면 흔들릴 뻔한 멘털도 빠르게 정상을 찾았다. 에르난데스를 삼진 처리하는 등 1회초를 무난하게 넘겼다.

4회초 알렉스 버두고에게 2루타를, 산더르 보르하츠에게 유격수 방향 내야안타를 맞아 1사 1·3루에 몰렸지만 후속 타자들에게 모조리 뜬공을 유도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타선의 지원도 확실했다. 토론토 타선은 2회말 2사 1·3루에서 대니 잰슨의 우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고, 4회말 마커스 시미언의 적시타와 보스턴 우익수 렌프로의 3루 송구 실책, 보 비셋의 적시 2루타로 3점을 올렸다. 5, 6회에도 1점씩을 추가한 토론토는 6점의 넉넉한 득점 지원으로 류현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보스턴전의 1승은 류현진에게 남다른 의미였다. 미국 진출 이후 9시즌 동안 류현진은 보스턴을 3차례 만났지만 한 번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류현진은 이날 승리로 3패를 안겼던 보스턴에 멋지게 앙갚음한 셈이다.

토론토 구단은 공식 트위터에 “류현진은 자신이 엘리트라는 걸 알아야 한다(Ryu should know he’s E L I T E)”고 적었다. ‘엘리트’라는 사실을 꼭 강조하고 싶었는지 ‘엘리트’의 스펠링을 대문자로 또박또박 박아 넣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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