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해서 다행이야, 세월을 비껴간 '타임캡슐'
[경향신문]
충남 서천군 판교마을은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 불린다. 이 마을을 여행지로 다룬 첫 기사가 경향신문 2008년 12월12일자 “뭐든지 옛날이어서 정겹다…충남 서천 판교”다. 지난 14일 본 풍경은 12년 전 이미지와 다름없다.
기사의 큰 사진 ‘장미사진관’의 슬레이트 지붕 색은 여전히 파랗다. 2008년 기사에 서술된 창에 닭 그림을 그려둔 가게 건물도 그대로다. 역사는 더 거슬러 오른다. 장미사진관 맞은편 현암갤러리는 건축물 역사와 주민 모습을 전시했다.
장미사진관은 적산가옥이다. 상량문에 ‘1932년’이란 기록이 남았다. 쌀가게로도, 여관으로도, 사진관으로도 썼다. 마을에서 유일한 2층 목조건물이다. 갤러리 옆 건물인 촌닭집은 행정 문서를 작성하던 대서방이었다.
갤러리 이름은 행정동 이름에서 따왔다. 판교마을은 판교면 현암리를 가리킨다. 현암(玄巖)은 검은 바위가 많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갤러리와 촌닭집 뒤로 이정표 역할을 하던 검은 바위가 들어섰다. 갤러리 한 면은 유리창으로 터 현암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판교(板橋)의 고지명(古地名)이 너덜이(또는 너더리, 너다리)다. ‘나무판자로 다리를 놓았다’는 뜻의 이름이다. 해물칼국수 식당 명을 옛 이름에서 따왔다. ‘행복 가득한 너더리 식당’ 문구 아래 부부 이름을 함께 적은 문패가 걸렸다. 판교마을엔 부부 이름 문패도 많다.
원래 해가 뜨는 동쪽에 있다고 동면(東面)이라 불렀다. 1931년 판교역이 들어서면서 면 중심지가 판교리에서 현암리로 이동했다. 1942년 동면에서 판교면으로 변경됐다. 판교 사람들은 ‘동면’이란 이름을 빼앗겼다고 여긴다. ‘해를 품은 동면 사람들’이란 타이틀을 걸고 축제도 연다.
판교란 이름도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경기 성남시 판교도 운중천에 판자를 놓았다는 유래가 나온다. 부동산 전망이 밝다고 해서 땅을 샀는데 가격이 오르지 않아 확인해보니 성남시 판교가 아니라 서천 판교라는 우스개가 있다.
한 일본인이 서천 판교 냉면을 맛보려고 한국에 왔다가 성남 판교에서 헤맸다는 실화를 전해준 이가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다. 판교삼거리에서 지도를 검색하다 우연히 김 교수를 만났다. 2020년 경향신문 연재물 ‘김시덕의 명저로 읽는 일본의 쟁점’ 소개 사진에 나온 사람인 듯해 아는 척했다.
그는 이날 오후 판교면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 포럼’ 주제 발표 발제자 중 한 명이다. 김 교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포럼 개최 소식을 확인하고 판교를 찾았다. 포럼 전후 틈날 때 말이나 들어볼까 하던 차 김 교수의 짧은 답사에 동행하게 됐다.
“저기 1층 ‘선진소방구현’이란 글자 보이시죠? 의용소방대 건물이에요.” 그가 판교삼거리 대백제로 2층 빛바랜 노란색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앞에 두고도 지나칠 뻔했다. 판교마을 안내지도에도, 예전 기사에도 나오지 않는 장소다.
김 교수는 이날 ‘서천군내의 문화자원 활용방안 제안-판교역 폐역 일대를 중심으로’를 발제했는데, 그 자원 중 하나가 전도관 건물(현암리 135-13)이다. 판교삼거리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감람나무 박장로’의 ‘신앙촌’으로 유명한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이하 천부교)가 지었다.
천부교 옛 이름인 ‘한국예수교’라는 글자는 원형의 검은색 페인트로 새겼다. 그 밑 ‘판교전도관’은 콘크리트 외벽에 양각으로 팠다. 김 교수는 “박태선씨가 1980년 ‘새 하나님 선언’을 발표하고, 천부교로 개칭할 때 이 건물을 팔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도관 건물은 마을 외곽 언덕에 자리 잡았다. 판교마을 일대가 훤히 내다보인다. 김 교수는 전도관 건물이 주로 도시 외곽 언덕에 들어섰다고 한다. 천부교나 전도관이 좋든 싫든 현대 한국사에 흔적을 남겼다는 생각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아왔다.
판교마을 또 다른 명소인 판교극장을 거쳐 장미사진관과 촌닭집이 있는 종춘로 887번 길로 이동했다. 동일주조장의 ‘TEL 45’, 지한약방 ‘전화 29’ 같은 두 자리 전화번호가 건물 중앙에 새겨졌다. ‘빈티지’니, ‘레트로’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암리는 장항선 판교역 개업으로 번영했다가 선로 변경으로 쇠퇴했어요. 폐역이 되면서 동네가 고스란히 가라앉아버렸어요.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건축물 같은 게 타임캡슐이 된 셈이죠. 급작스러운 쇠퇴가 빼어난 경관을 만들었습니다. 베냐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빌려 말하면, 민속촌 등은 데는 여기저기서 뜯어 만든 복제품 같은 것인데, 판교마을은 아우라를 지닌 원본 같은 거죠.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콘셉트도 잘 잡았어요.”
김 교수는 “여유가 생긴 뒤로 개발이나 파괴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이 단일하지 않다. (오래된 마을에 대한 관심이나 인기는) ‘이제 그만 부숴라’라는 저항일 수도 있다”고 했다.
자동사 ‘멈추다’는 ‘더 계속되지 않다, 더 움직이지 않다’이다. ‘멈춤’은 ‘정체’나 ‘박제’를 뜻할 수도 있다. 이날 포럼 취지는 ‘마을 활성화’다. 한광야 동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근대건축물에 작은 도서관이나 미술관을 들이고, ‘철도역~종판로~판교천길’ 도로를 보행자 중심으로 만들자고 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공공이 중심이 돼 오방앗간(삼화정미소)은 로컬푸드 직매장, 촌닭집은 공공 운영 공방이나 예술가 시설, 판교극장은 박물관, 장미사진관은 미술관으로 만들자고 했다.
김 교수는 △옛 건물을 새것처럼 보수하지 말 것 △벽화를 그리거나 새로 칠하지 말 것 △장미사진관은 그대로 남길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주민들이 마을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켜내면서 역사 도시라는 미래를 선택한다면 주목받는 여행지가 될 것이다. 다만 마을은 주민 생활공간이고, 최종 결정도 주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군은 앞서 사들인 장미사진관 등 건축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하고, 판교마을을 근대문화유산 마을로 조성하려 한다. 예산 44억원을 투입한다. 유산의 보존, 주민과 방문객의 공존이라는 목표는 이뤄질 수 있을까.
마을을 떠날 때 40년 된 판교역전슈퍼 주인의 환대가 떠올랐다. 편의점이 구멍가게를 밀어내고, 프랜차이즈가 식당을 내쫓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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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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