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 닫고 비인선은 사라졌어도..역전 소나무·교량과 터널은 그때 그 자리에

충남 서천 |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1. 5. 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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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구 판교역 앞 소나무는 1932년 심었다. 판교역전슈퍼(왼쪽)는 1980년대 초 개업했다.
구 판교역에 옛 역사 건물 일부를 보존했다.

판교면 현암리 구 판교역사(사진)엔 판교특화음식촌이 들어섰다. 역전 소나무 한 그루가 옛 역사를 기록한다. 안내판엔 1930년대 신봉균씨와 박동진씨가 심은 소나무라고 썼다. “(판교장은) 먹을거리, 광대, 약장수, 동동구루무 장수 등이 몰려들어 진풍경”을 이뤘다고 적었다. “소나무가 강제징용 노동자와 위안부로 끌려가는 주민 모습도 봤을 것”이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1931년 개업한 역은 2008년 폐역됐다. 철도 노동자들의 작은 역사도 있다. “(폐역 전) 판교마을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해서 먹곤 했죠. 운전실에서 5분 만에 물 마시듯 짜장면을 먹고 다시 화물열차를 몰았어요.”

류기윤 한국철도 KTX 기장도 판교마을 답사에 동행했다. 김 교수는 포럼에서 장항선 폐선 구간과 함께 비인선 건설 부지도 서천군의 활용 가능한 문화 자원으로 제시했다. 철도 노동자이면서 철도 ‘덕후’인 류 기장은 비인선 흔적을 찾으려 서천에 왔다. 포럼 전 틈이 나 비인선 답사에 나서는 류 기장을 따라갔다.

류기윤 한국철도 KTX 기장이 서천군 장포리 509-7번지 응지터널 앞에서 ‘응지’라고 적힌 글씨를 가리키고 있다. 철도 터널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불하 뒤 주로 창고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터널이 폐선 철로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다.

서천군 서부가 비인군이었다. 1914년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이 서천군으로 통폐합됐다. 비인선은 ‘서천~비인’을 연결하려 했다. 1966년 4월 서천군 서문 서도국민학교에서 ‘비인 공업지구조성사업 및 비인선 철도기공식’이 열렸다. ‘비인공단 조성’은 공화당의 선거공약이었다. 1969년 조성 계획은 취소됐다. 한 지역 주민은 울산 공단에 밀렸다고 기억한다. 온라인에선 비인선 기록을 찾기 힘들다. ‘성산지기’(聖山之氣)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철도블로거 김구현씨가 2013년 답사한 기록이 전부다. 지금 비인선은 교량과 터널 같은 흔적만 남았다. 첫 목적지는 장포리 509-7번지 응지터널이다. 김 교수에게 받은 터널 주소지로 왔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마침 터널 주인이다. “1966년생인데, 그해 터널을 팠어요. 아버님이 터널 공사 때 일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볏짚을 쌓아뒀죠. 반대쪽은 펜션에서 창고로 쓰고요.” 터널 왼쪽 콘크리트 벽에 ‘응지’라는 이름이 파여 있다.

류 기장이 말했다. “폐선 터널이 사라지는 법은 없어요. 불하되면 터널을 주로 창고로 써요. 안이 선선하다보니 와인 저장고로 활용하거나 버섯을 재배하는 곳도 있죠. 터널은 사라진 철길 경로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해요.”

건설 중단된 비인선 구간의 작은 교량. 서천읍 송신로 118번지 주변 논에 건설했다. 철도 매니아들은 이런 구조물을 이정표 삼아 철로를 유추하곤 한다.
서천읍 송신로 118번지에 건설된 비인선 교량.
서천읍 신송리 167-4번지 쪽에 남은 비인선 구조물.

서천읍 송신로 118번지 주변 논에 들어선 작은 교량을 확인했다. 서천읍 신송리 167-4에서도 철도 구조물을 찾았다. 판교마을로 돌아가던 도중에 장천로 1062번길 쪽에서 우연히 작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발견했다.

류 기장은 틈날 때마다 철도 답사를 떠난다. “이러고 다닌다고 바보라고 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터널이나 교량 같은 구조물을 이정표로 가상의 선로를 긋고 철길을 찾는 재미가 짜릿해요. 설레기도 하죠. (폐선에서) 시골 손님들 태우고 바닷가 마을 철길을 다니는 상상하면요.” 한편으로 “우리 곁에 있었는데도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진 철도 흔적들을 보면, 슬프거나 아련한 마음이 든다. 더 못 볼까 봐 절박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류기윤 한국철도 KTX 기장. 류기윤 제공

전국 폐선 구간에 트램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시속 20~40㎞로 천천히 운행하면서 마을과 마을을 잇는 거죠. 레일바이크보다는 트램이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더 낫다고 봐요.”

류 기장은 어렸을 때 역에서 기차 시간표를 외웠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생긴 나우누리 PC통신의 ‘철도청사람들’ 동호회 창단 멤버다. 류 기장 블로그(blog.naver.com/gt36cw)에서 철도 사랑과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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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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